“이혼한 사이에 저도 굳이 창피당할 일은 하지 않아요.”
허남준이 술잔을 되찾으려 손을 뻗자, 문석진이 일부러 힘을 주는 바람에 술이 그의 옷에 그대로 쏟아졌다.
하지만 강서윤이 보는 각도에서는 마치 허남준이 문석진에게 술을 끼얹은 것처럼 보였다.
문석진은 눈빛을 단숨에 풀어 내리며 한층 힘없이 말했다.
“허 선생님, 저한테 불만이 있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례하게 굴면 곤란하잖아요.”
그 말에 허남준은 잠시 멍해졌다. 그는 뺏긴 술잔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제가 일부러 술을 뿌리려던 건 아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급히 다가왔다.
강서윤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허남준 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그녀는 다짜고짜 허남준의 뺨을 때리고 문석진을 뒤로 감쌌다.
허남준은 충격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공공장소에서 뺨을 맞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서윤아!”
류민희도 헐레벌떡 달려왔다. 눈빛에는 당황함이 역력했다.
“허 선생님, 괜찮아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강서윤이 류민희의 말을 가로챘다.
“내가 똑똑히 봤어. 근데 무슨 오해가 있다는 말이야? 허남준 씨, 정말 실망이에요.”
그렇게 말한 뒤, 강서윤은 문석진을 데리고 곧장 술집을 나섰다.
허남준은 냉소를 지었다.
문석진 때문에 그를 공개적으로 때릴 정도라면, 이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동안 헌신해도 강서윤에게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은 적 없었다는 사실만 새삼스레 떠올랐다.
류민희는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강서윤을 부둥켜안았고 눈빛에는 묘한 승리감이 깃들어 있었다.
반면, 허남준은 혼자 바 테이블에 앉은 채 잔을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다.
“손님, 이미 많이 드셨는데 계속 드시겠어요?”
바텐더가 걱정스레 다가왔다.
“계속 마실래요. 저 돈 있어요.”
허남준이 그렇게 말하자, 바텐더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열 번째 잔을 건네주었다.
도수가 높은 술이 넘어가자 위장에서 불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그 얼얼한 고통이 신경을 마비시키면서 오히려 머리는 점점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더 마셨는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위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고, 다음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며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바텐더는 급히 달려와 허남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다 결국 그의 휴대폰을 꺼내 긴급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는데, 하필이면 그 번호가 강서윤이었다.
강서윤은 걸려 온 전화번호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끊어버렸다. 이 순간만큼은 허남준에 대한 소식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허남준은 들리지도 않는 기계음만 가냘프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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