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를 하고 있던 손윤서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추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또 진태웅이야? 도대체 이 인간은 왜 이렇게 끈질기게 나타나는 거지?’
병원에 도착한 손윤서는 처참한 몰골로 누워있는 남동생을 보고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오향은이 진실을 왜곡하며 상황을 설명하자 마치 진태웅이 짐승처럼 날뛰며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손윤서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상했다.
“엄마,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진태웅을 찾아간 거야?”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는 분명 뭔가 숨겨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 오향은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랑 네 동생이 이렇게까지 맞았다는 게 더 중요한 거지!”
“내가 전부터 말했잖니? 진태웅은 길러줘도 소용없는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저놈은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대해줬는데 이혼한 후로 진태웅 그놈이 한 짓을 좀 봐!”
오향은의 말에 손윤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쩌면 진태웅이 정말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알겠어, 엄마. 내가 내일 진태웅 씨 찾아가서 직접 따져볼게.”
그날 밤, 손윤서는 병원에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돌봤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솔빛 아파트로 진태웅을 찾으려 향했다.
오전 7시 30분.
그 시간, 진태웅은 공원의 돌 탁자에 앉아 서광수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광수는 자연스럽게 진태웅과 손윤서 가족관계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서광수는 사적인 감정에는 개입하지 않고 그저 조언을 건넸다.
“남자는 스스로 능력을 갖춰야 한다.”
“몸을 단련해서 나라를 지키든, 머리를 써서 사업을 하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면 노력해야 돼.”
“그러니 아침마다 네가 하던 쓸데없는 훈련은 그만하고 저랑 같이 전통 무술이나 연마하는 게 어때?”
서광수는 진태웅의 성실함을 높이 샀다. 비록 체력은 조금 약하지만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음, 한번 생각해 볼게요.”
진태웅은 웃으며 대충 넘겼다.
사실 그는 서광수와 아직 친분이 깊지 않았기에 굳이 해명을 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뒀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이 시간에 누가 나한테 전화하지?’
화면을 확인해 보니 발신자는 다름 아닌 손진철이었다.
“할아버님!”
“너 아직도 날 기억하고 있었니? 이렇게 오래 얼굴도 안 보이니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손진철은 입으로는 진태웅을 꾸짖었지만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정이 묻어났다.
그런 말투가 진태웅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좀 바빠서 시간이 없었습니다. 조만간 찾아뵐게요.”
진태웅은 적당한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으나 손진철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네가 그렇게 바쁠 리가 없잖아.”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수진이가 나한테 뛰어와서 얘기할 정도면 분명 심각한 일이겠지. 오늘 당장 우리 집에 와라!”
손진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화기 너머에서 손수진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그냥 할아버지 뵈러 온 거라구요!”
수화기 너머에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소리에 진태웅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결국 오늘 저녁 방문을 약속했다.
진태웅이 솔빛 아파트를 막 나서는 순간, 손윤서가 차를 몰고 그곳으로 들어섰지만 두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마주치지 않았다.
손씨 저택.
평소에는 손진철과 집사만이 머무르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할아버지, 포도 드세요.”
손수진은 정성껏 씻은 포도를 할아버지의 입에 건넸는데 누가 봐도 영락없는 사랑스러운 손녀의 모습이었다.
손진철은 흐뭇하게 웃으며 흔들의자에 몸을 기댄 채 부채를 흔들었다.
“수진아, 취업 준비는 잘하고 있니? 정말 네 언니 회사에서 일할 생각은 없는 거야?”
“절대 안 가요! 벌써 몇 개 기업에서 저한테 제안이 왔는데 어디로 갈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진태웅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손진철의 곁에 다가갔다.
“할아버지 이제 막 주무시기 시작했어요. 형부, 일단 앉아서 물이라도 한잔 드세요.”
손수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진태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손진철의 이마에 땀이 가득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침 햇살이 그다지 뜨겁지도 않으니 손진철이 이렇게 땀을 흘릴 리가 없었다.
그제야 손수진도 이상함을 느끼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진태웅을 바라보았다.
“에헴, 태웅이 왔구나.”
그때, 손진철은 곁에 누군가 있는 것을 감지한 듯 힘겹게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기력이 부족해 다시 쓰러지듯 눕고 말았다.
“할아버지, 가만히 계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진태웅은 얼른 손진철을 진정시키며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얼마 후,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진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요 며칠 약 제대로 안 드셨죠?”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약을 꾸준히 드시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할 거라고요.”
그 순간, 옆에 있던 손수진이 무언가 떠올린 듯 눈썹을 찌푸렸다.
“아, 맞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았는데 어제 왔을 때 약탕기가 비어 있었어요.”
“설마... 언니가 요즘 약을 가져오지 않은 건가?”
원래 손윤서는 진태웅이 할아버지의 치료를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녀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직접 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3일에 한 번씩,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진태웅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떼려 했는데, 마침 그 당사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문턱을 넘으려던 손윤서는 뜻밖의 인물을 보고 순간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러나 이내 차가운 눈빛을 띠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진태웅 씨, 당신이 감히 여길 또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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