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상황에선 다들 속내를 감추고 있어. 섣불리 다른 기업과 손잡는 건 위험 부담이 커. 설마 진태웅이 네게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는 명확한 위협이 담겨 있었다. 양지안이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전유식은 가짜 결혼 사실을 폭로할 생각이었다.
양정국 역시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손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순간 방 안은 정적에 잠겼다. 긴 침묵 끝에 양지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죄책감 어린 눈빛으로 양정국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할아버지를 속였어요. 사실 저랑 진태웅은 결혼하지 않았어요. 결혼 증명서는 가짜였어요.”
“지안아, 그게 무슨 말이니?”
은미숙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진실에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말문이 막힌 채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진태웅은 양지안의 말과 함께 스치는 씁쓸한 눈빛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 사실이 오래 숨겨질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오히려 빨리 터뜨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전개였다.
그리고 이 전개 뒤에는 전유식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양정국은 묵직하게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누른 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휴... 나도 눈치채고 있어야 했는데.”
“할아버지, 화 안 나세요?”
꾸중을 각오하고 있던 양지안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눈이 커졌다.
양정국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순간 그는 양씨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앞에 두고 무언가 연극을 벌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착각이었다. 지금 양지안의 시선은 오직 진태웅과 할아버지에게만 향해 있었다.
“할아버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양정국의 말을 가로막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 할아버지께서 저한테 진태웅과 결혼하라고 하셨을 때, 저는 정말 반대했어요. 약혼 상태였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제 인생을 맡기라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죠. 하지만 최근 이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생각했어요. 만약 앞으로도 진태웅과 살게 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요. 오히려 태웅 씨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마음마저 들더라고요.”
양지안은 말끝을 흐리며 옆에 앉은 진태웅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의 볼에는 은은한 홍조가 번지고 있었다.
“사실 제 마음이 변했다는 걸 오늘 전까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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