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희와는 중학교 때 자주 얘기도 하며 친했기에 하선아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래!]
사실 그녀는 동창생들의 결혼식에 자주 참석하는 편은 아니었다. 요즘은 훈훈하게 축하하고 축하해준 것에 감사하는 분위기가 아닌 자신의 직장이나 남자친구를 뽐내는 것에 열을 내고 있었으니까.
하선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공간에서 수정구슬을 꺼내 터트린 다음 흡수하기 시작했다.
총 7개가 되는 수정구슬을 그녀는 한꺼번에 다 흡수해버렸다.
처음에는 이 특유의 냄새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습관이 돼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다 흡수하고 나니 어쩐지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 돌며 모든 것들이 모호하게 보였다.
서둘러 안경을 벗어 던지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안경이 없어도 아주 작은 글씨들이 전부 다 보였다.
“앞이 제대로 보여! 하하하! 안경이 없어도 다 보인다고!”
수정구슬이 근시까지 치료해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안경을 벗을 수 있게 되자 수정구슬이 좀비 머리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억대의 다이아몬드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눈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가볍고 에너지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체력이라면 농사일도 아주 손쉽게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공간도 확실히 전보다 몇 평은 더 커졌다. 수정구슬을 흡수하면 공간도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하선아는 가벼운 몸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다 다시 액세서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결혼식에 초대한 안주희에게 줄 핑크색 목걸이를 하나 고르고 나머지는 다시 큰 상자 안에 담았다.
하정욱은 아침 댓바람부터 밭으로 나갔고 양윤경은 장 보러 갔다. 그리고 이현숙은 마당에서 햇볕 쪼임이나 하다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하선아의 집과 그녀의 큰아버지네 집은 한 달에 한 번씩 이현숙을 돌보고 있다.
하선아는 아침을 먹은 후 스쿠터를 타고 밭으로 향했다. 가는 길 그녀는 이웃집 어르신과 만나게 되어 잠시 멈춰 섰다.
“선아 너는 왜 다시 돌아온 거니?”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시골에서 나가 도시에서 정착하려고 했기에 하선아의 선택은 꽤 의아한 선택이었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밭일하려고 사직서 냈어요.”
그녀의 말에 어르신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혀를 끌끌 찼다.
“선아야, 밭일이라는 건 쉬운 게 아니야. 대학교도 졸업한 애가 뭐 한다고 여기로 다시 돌아와?”
“저 어릴 때부터 엄마랑 아빠 따라 밭일 많이 해봤어요.”
하선아가 말했다.
“네가 일을 하면 얼마나 했다고. 밭일하려면 기본적으로 체력이 있어야 해. 그런데 네 팔뚝을 봐.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팔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 내 등에 있는 이 물건들 보여? 20킬로는 족히 되는 것을 네가 어떻게 들어? 게다가 봄은 그래도 괜찮지만 여름이 되면 덥고 벌레도 많아.”
어르신의 말에 하선아는 금과 액세서리들을 돈으로 바꾼 후 수월한 밭일을 위해 일단 기계부터 사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도 기계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기곗값이 워낙 비싸 그걸 사게 되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르신은 괜찮다며 알아서 하겠다는 하선아의 단호한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갈 길을 갔다.
하선아가 밭에 도착해보니 땀으로 옷이 흠뻑 젖은 채 무거운 약통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하정욱의 모습이 보였다.
하정욱은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를 잠깐 펴며 쉬다가 하선아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얼른 집으로 돌아가!”
예전의 그녀였다면 힘이 부족해 힘들었겠지만 수정구슬을 흡수한 지금은 이런 것쯤은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하선아는 약통을 등에 인 채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약을 쳐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정욱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괜히 속상해졌다. 그와 양윤경 사이에 자식이라고는 애지중지하게 키운 하선아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 밭일을 도와주겠다는 딸의 기특한 말에도 가장 쉬운 일만 하게 해줬다.
그리고 그녀를 대학교에 보내고는 자신들은 괜찮다며 매달 그녀에게 10만 원이라는 생활비를 보냈다.
채소와 과일을 판 값의 5배나 되는 돈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딸이 고생하는 것이 싫어 망설임 없이 돈을 보냈다.
물론 그렇다고 하선아가 편히 생활한 건 아니었다. 10만 원이라는 돈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기에 매번 전화를 걸면 하선아는 늘 야근이 아니면 지하철이었다.
‘그래, 선아도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겠지. 밭일이 힘들기는 해도 심적으로는 덜 힘들지도 몰라.’
하정욱은 생각을 마치고 다시 하선아를 바라보았다.
조금 쉬고 하라는 말을 건네려던 참이었는데 하선아는 힘들지도 않은 건지 그 무거운 걸 등에 인 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끝내버렸다.
하선아는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도 거뜬한 자신의 몸을 보며 이건 분명히 수정구슬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이 일을 하정욱이 했으면 아마 중간에 몇 번이나 휴식 타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하선아는 한꺼번에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뿐만이 아니라 거친 숨 한번 내쉬지 않았다.
하정욱은 일을 다 끝낸 채 활짝 웃고 있는 딸과 자신의 거친 양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1시간이나 더 돼야 끝날 일이 하선아 덕에 20분도 안 돼 다 끝이 나 버렸다.
‘내가 늙은 건가...? 하지만 난 아직 50대도 안 됐는데?’
하선아는 신선한 채소들을 보며 싱긋 웃더니 곧바로 하정욱에게 백만 원을 송금했다.
“아빠, 제가 방금 송금했으니까 다른 곳에 팔지 말고 이것들 다 저한테 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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