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리는 이미 깎여버린 체면을 억지로 차리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녀의 대답에 고인성은 내심 실망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런 쪽으로 생각이 트인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눈에도 실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워낙 감정을 잘 숨기는 고인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캐리어를 다시 열었다.
“해명은 잘 들었고 그래도 낭비하면 안 되니까 일단은 챙겨가자.”
“네.”
낭비하지 말자는 고인성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중이 되어 생각해보니 송유리는 자신과 고인성의 애매모호한 사이에서 저게 어떻게 낭비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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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리는 짐을 한 아름 들고 고인성의 넓은 집으로 들어섰다.
방도 많은 이 집에서 송유리의 방은 하필 고인성의 옆방이었다.
말로는 송유리가 무서워할까 봐 그런 거라는데 송유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인성이 오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신을 방에 들여다 놓은 뒤 그가 회사로 가버리자 송유리는 그제야 그게 오버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큰 집에 혼자 있으니 혼자 중얼거려도 메아리가 들려와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대낮이라 송유리는 그나마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고인성도 나가버리니 심심해진 송유리는 두려움도 달랠 겸 저택을 돌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집에는 송유리뿐이었고 고인성도 딱히 당부한 말이 없었기에 그녀는 방마다 문을 열어보며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러다 어이없게 길을 잃어버린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고인성에게 문자를 하려고 했지만 집안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을 하자니 자신을 바보로 볼까 봐 살짝 망설여졌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언제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유현을 찾아가 따질 일도 있었기에 한참 동안 고민하던 송유리는 마침내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서재에 프린트기 있어요?]
길 잃은 송유리는 이거라면 정문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보내고 난 송유리는 일단 서재로 가 지원서를 챙긴 뒤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숙소부터 갔지만 그곳에 한유현이 없어서 송유리는 다시 동아리실로 향했다.
학생회 부원들과 네일아트에 대해 얘기하던 한유현은 송유리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네가 여길 왜 와?”
“지원서 내러 왔어.”
“이미 냈잖아.”
“너도 아는구나, 내가 이미 낸 거. 근데 왜 지원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는 거야?”
송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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