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리는 매우 중요한 일임을 직감하고 몸을 숙여 이화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화영은 힘겹게 입을 뗐다.
“내 디자인 스케치북은 우리 집 3층 다락방 금고 안에 있어. 금고는 문 오른쪽에서 세 번째 줄 아래쪽 캐비닛 안에 있고 캐비닛을 열면 바로 보일 거다... 열쇠는 내 가방에 있으니 이따 가방을 가져가거라. 유리야... 할머니는 너를 가장 믿는다. 이건 할머니 평생의 가장 큰 재산이니 잘 보관하고 꼭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송유리는 이화영의 말씀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며 새겨들었다.
할머니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결국 아들 생각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말씀하셨다.
“만약 혁수가 정말 회사를 유지하기 힘들어지면 네가 한 번만 도와주렴... 부탁한다, 딱 한 번만이면 돼...”
송유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이화영을 보며 자신이 무슨 능력으로 송혁수를 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을 예뻐해 주신 이화영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네, 알겠어요.”
이화영은 안심이 된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송유리가 이화영의 손을 꽉 잡았다.
“하지만 할머니, 할머니도 저에게 약속해 주세요. 꼭 오래 사셔야 해요. 할머니, 전 이제 할머니 말고 다른 가족이 없어요.”
이화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리를 위해서... 꼭 버텨볼게...”
이때 병실 문이 열렸다.
송혁수와 임진경이 들어왔다. 김이나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자기 일을 보러 간 듯했다.
김이나가 도와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한 송혁수는 기분이 좋아져 노모가 당장 돌아가실까 걱정하지 않았지만 송유리를 보자 표정이 굳었다.
“네가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정말 질기게도 따라다니는구나. 어머니가 이렇게 아프신데도 돈을 뜯어내려고?”
병상에 누워 일어날 수 없는 이화영은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입 다물어.”
“양아버지의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여사님 마음속에 유리 씨는 영원한 손녀딸이에요. 그건 변하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받으세요.”
조미정은 주머니에서 몇 장의 지폐를 꺼냈다. 대략 십만 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그녀는 그 돈을 송유리의 손에 쥐여주었다.
송유리는 놀라서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조미정이 단호하게 손을 잡았다.
“안 돼요,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
“받을 수 없다니요. 이 돈은 양아버지가 응급실 앞에 떨어뜨리고 간 건데 제가 돌아오다 주웠어요. 욕은 욕대로 먹었는데 돈까지 안 받으면 손해잖아요! 그리고 유리 씨가 이 돈을 안 받는다고 해서 양아버지가 유리 씨를 더 좋게 볼 리도 없고요.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니 가져가서 맛있는 거 사드세요.”
송유리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돈을 받은 뒤 조미정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끔 너무 융통성 없이 고지식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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