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먹어 봐.”
설인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덧 입가에 나타난 죽순을 내려다보며 몸이 흠칫 굳었다. 방금 그가 사용했던 젓가락이지 않은가?
하지만 귀신에 홀린 듯 입을 벌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음미했다.
하시훈의 두 눈에 웃음기가 묻어났고 다시금 설인아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아서 먹을게.”
애초에 계약 결혼에 불과한지라 다정한 스킨십은 사치였다.
이렇게 받아먹을 바에는 차라리 본인이 먹고 말지.
하시훈은 눈썹을 까딱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분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는 수줍음을 잘 타는 편이다.
설인아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두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분위기가 사뭇 화기애애했다.
...
프런트.
장여진은 초조한 얼굴로 혜성그룹 로비를 서성거렸다. 백지성이 대체 무슨 조처를 할지 당최 감이 안 잡혔다.
비록 사과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백지성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조금 전에 봤던 여자의 정체가 사뭇 궁금해졌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고 백지성이 유유히 걸어 나왔다.
방금 지켜보던 직원들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결과를 알고 싶어 일부러 남은 사람도 있었다.
백지성은 어두운 안색으로 장여진을 향해 다가갔고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사표 내고 짐 싸요.”
장여진의 표정이 돌변했다.
“네?”
“감히 저를 잘라요? 우리 아빠가 누구인지 알죠?”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가 주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백지성은 쌀쌀맞은 태도로 일관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하죠. 여진 씨도 예외는 아니에요. 해고 조치를 내린 이유는 태도 문제이며 다짜고짜 남자를 유혹한다고 허튼소리를 했기 때문이죠.”
이 순간까지도 그녀는 본인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했다.
그나마 대주주의 딸이라서 봐줬을 뿐, 아니면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진작에 경비원에게 쫓겨나고도 남았다.
백지성도 점차 인내심을 잃었다.
한편, 장여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녀의 정체를 알면서도 해고하다니?
이내 두 눈을 부라리며 백지성을 노려보았다.
“누가 봐도 의도가 불순한 여자인데 내가 잘못 판단하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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