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성은 부하 직원의 보고를 들은 뒤로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정이 격해져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사모님 진짜 대단하네.’
‘듣기만 해도 피가 끓는데, 현장에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통쾌했을까.’
하시훈은 들고 있던 서류를 넘기다 말고 손을 멈췄고 늘 냉담하던 눈동자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
‘드디어 이빨을 드러냈군.’
그는 고개를 들고 백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치진 않았나요?”
백지성은 고개를 저으며 해맑게 웃었다.
“사모님은 전혀 다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설형우 손을 부러뜨리셨어요.”
이보다 더 시원한 소식이 또 있을까.
하시훈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오늘 회사 사람들한테 밀크티 한 잔씩 돌려요.”
햇살조차 평소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백지성은 즐거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대표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설인아는 설씨 가문 별장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다.
이곳을 떠나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자라온 집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이미 그 안의 사람들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설인아는 문득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그리워졌다.
‘지금쯤 두 분은 뭐 하고 계실까?’
‘벌써 반년이나 못 봤네.’
입술을 꾹 다문 그녀는 바로 차를 돌려 구씨 가문 별장으로 향했다.
구씨 저택.
별장 왼편에는 넓은 정원이 있었다. 온갖 꽃들과 식물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고 특히 지금은 덩굴장미가 한창 만개해 있었다.
꽃 아치 아래에는 벽돌로 구획된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그 안의 토마토는 붉게 익어 당장이라도 따서 한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다.
“인아 왔어, 문 앞에 있어.”
연순자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설인아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며 환하게 빛났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채소를 급히 옆에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내 새끼 왔네!”
설인아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손에 든 짐을 돌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활짝 웃으며 연순자를 꼭 안고 턱을 그녀 어깨에 기대며 애틋하게 속삭였다.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로 그녀의 마음은 지쳐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연순자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등을 다독였고, 그러면서도 일부러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진작 좀 자주 왔어야지?”
그러고는 몸을 살짝 뒤로 빼고 설인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곧 그녀의 눈엔 걱정이 어려 있었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애가 홀쭉해졌네.”
그러고는 그녀의 팔을 살짝 잡아보았는데 살이라곤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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