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훈의 핸들을 꽉 잡고 있던 손의 힘이 풀리면서 억압된 분위기도 사라졌다.
설인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대마왕이 드디어 화가 풀렸군.’
하시훈은 머리를 천천히 시트에 기대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부부야. 넌 그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그의 미간이 조금 전보다 더 풀렸다.
설인아가 그의 아내이므로 그녀를 지켜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였다.
“게다가 네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해서 문제를 지금까지 끌고 온 거야.”
하시훈은 시선을 설인아에게 돌렸다.
그러나 설인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이에 하시훈이 다시 미간을 찌푸리자 설인아는 자조한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예전에 난 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았어. 지금 나는 더 이상 그렇게 힘들게 살고 싶지 않고 참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예전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고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시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겪었지?
설인아는 앞을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더 절망적이어야 더 단호하게 모든 것과 끊을 수 있어.”
마지막에 그녀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묻어 있다.
그녀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반드시 겪어야 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니까.
하시훈은 물끄러미 설인아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들고 앞을 바라보는 설인아의 눈빛이 공허해 보였다.
그는 설인아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력적이고 다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옆에 항상 내가 있어.”
다시 말하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말해 주면 해결해 주겠다는 뜻이다.
“일단 내려. 식사하러 가자.”
이에 설인아는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하시훈을 쳐다보았다.
예전에 유명자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을 때 하시훈의 취향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시훈은 먼저 차 문을 열고 내려갔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무거나 먹자.”
설인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녀는 하시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번화한 상가 거리인데 일부러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교통이 번잡한 길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방금 내 기분이 안 좋은 걸 알고...’
설인아는 이상하게 올라오는 생각을 억누르고 하시훈의 뒤를 따랐다.
하시훈의 다리가 길어서 설인아는 바로 한참 뒤처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시훈을 빨리 따라잡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로 이때 원래 앞에서 걸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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