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나은은 평상시에 거의 외출하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화실에서 보낸다.
그런 그녀가 폭설이 내리는 이 날씨에 밖에 나가려 하니 주미나도 나름 궁금했다.
“나은이 넌 남자친구도 없는데 이 날씨에 뭣 하러 밖에 나가?”
연나은은 이제 곧 여기를 떠난다는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대충 대답했다.
“볼일이... 있어서요.”
어차피 이따가 비자 신청하는 곳까지 실어다 주면 그들도 대충 알게 될 테니까.
주미나는 더 캐묻지 않고 진시준과 함께 오늘의 스케줄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신나게 얘기를 나누느라 뒷좌석에 또 한 사람이 앉아있다는 걸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빨간 불일 때 주미나가 립스틱을 꺼내서 진시준에게 발라 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진시준도 딱히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받쳐주며 아주 섬세하게 립스틱을 발라줬다.
두 사람은 이제 곧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고 이를 본 연나은은 몸을 돌려 창밖에 흩날리는 눈꽃을 바라봤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는데 주미나가 갑자기 집에 돌아가서 외투를 챙기겠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에 2킬로밖에 안 남았다고 보란 듯이 떠 있었지만 진시준은 고민 없이 연나은에게 쏘아붙였다.
“집에 다녀와야 하니 넌 따로 택시 잡아.”
연나은은 쓴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 없이 홀로 차에서 내렸다.
검은색 카이엔이 도로를 질주하며 매정한 눈꽃을 흩날렸다.
차들도 사람도 없는 거리에서 연나은이 소복하게 쌓인 눈을 짓밟으며 2킬로를 걸어서 비자 신청하는 곳까지 도착했다.
서류를 바치고 안에서 나오자 문 앞에 마침 고등학교 담임이 서 계셨다. 두 사람은 가볍게 대화를 나눴고 그녀가 곧 해외로 이주한다는 소식에 담임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해외 나가면 안 돌아오려고? 너희 삼촌이 허락하겠어?”
연나은은 담임이 왜 느닷없이 삼촌을 언급하는지 몰라 대충 거짓말을 둘러댔다.
“이미 동의했어요. 저랑 삼촌은 혈연관계도 없고 저도 이젠 다 컸으니 계속 신세 질 순 없잖아요. 외국에 나가서 세상 구경도 하고 나름 좋을 것 같아요.”
오전에 그녀는 이미 여태껏 진시준한테서 받은 선물을 싹 다 정리해냈고 일일이 중고 사이트에 올렸다.
이어서 부동산에 연락해 연씨 가문 옛 저택을 내놓았다.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휴대폰이 진동했다.
열어보니 주미나가 보낸 열몇 장의 사진과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나은아, 나랑 시준이 하와이 가서 며칠 놀고 올 테니까 혼자 얌전히 집 잘 지켜야 해.]
사진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일 게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열애를 공개한 이후로 데이트할 때마다 주미나가 이런 사진들을 몰아서 보내왔으니까.
이전에는 이런 사진들을 보면 괴롭고 잠을 못 이루고 엉엉 울어서 두 눈이 빨갛게 부었지만 이젠 이 남자를 가족처럼 대하기로 결심하니 더는 주미나의 행동에 자극을 안 받았다.
주미나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여 연나은은 아주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요. 재미있게 놀다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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