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딴 ‘추억팔이 후회남’ 클리셰 같은 건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거 아닐까.
‘나 요즘 엄마랑 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봐.’
우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깃을 정리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한다.
“너 안 갈 거면 난 먼저 가볼게.”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도강우는 가만히 초대장을 들여다보며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해 질 무렵.
심하윤은 성가연과 함께 운명루에 도착했다.
성가연은 심하윤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가며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저 덩치 아저씨만 좀 이상하고 나머진 그냥 좀 우습고 시시해. 오빠도 곧 올 거니까 너무 걱정 마.”
심하윤은 그녀의 손등을 살짝 두드리며 낮게 말했다.
“난 네가 걱정돼. 정신 바짝 차려. 괜히 수상한 놈한테 엮이지 말고.”
그 말에 성가연은 살짝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나야 좋지. 요즘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누가 한번 덤벼줬으면 좋겠네.”
그러곤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으며 으스스한 기운을 풍겼다.
두 사람이 문을 넘자마자 안에 있던 다수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중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대놓고 심하윤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눈빛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추악했다.
“심하윤 씨. 설마 별누리 재단이 당신 거였을 줄이야. 기억 안 나요? 예전엔 날 ‘아저씨’라고 부르던 애였는데...”
심하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한데요 기억이 전혀 안 나네요.”
그리고 마주친 그의 민망한 눈빛을 똑바로 보며 한마디 더 얹었다.
“기억력이 아주 좋으시네요. 김 대표님.”
‘뭐야? 지금 내가 늙었다는 소리야?’
김 대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사무적으로 기획서 한 장을 탁 던졌다.
“그럼 저한테 체면을 안 주시겠다는 말이네요?”
그 순간, 다른 대표들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바뀌었다.
김 대표가 대놓고 심하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성가연이 재빠르게 하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김 대표님, 그냥 술 한잔이잖아요. 제가 대신 마실게요. 우리 하윤이는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았어요. 오빠가 술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거든요.”
김 대표는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가연 씨가 술 마시고 싶은 건 이따 따로 시간 내서 하시고요. 지금은 말이죠...”
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이 잔을 거절하신다면 오늘 논의하려던 합작은 보류해야겠네요. 요즘 비도 많이 와서 약초 수확이 어렵거든요. 건조 작업도 늦춰질 거고.”
두 사람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
김 대표는 회유와 협박을 교묘히 섞으며 오늘 이 자리에서 심하윤을 반드시 꺾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마치 재미있는 쇼라도 보는 양 김 대표의 편에 서서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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