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난 추억이 뇌리를 스쳤다.
두 달 전 차윤서가 전화 와서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을 때 마침 교통사고를 당한 송이나와 함께 있느라 그녀를 찾아갈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박도하는 그녀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고 당부했었다...
박도하는 안색이 확 일그러진 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래서 이혼합의서에 언제 사인했는데?”
“두 달 전입니다.”
정지민의 대답은 그의 희망을 모조리 짓밟았다.
‘그때부터 이혼을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
박도하는 마음이 복잡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다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그녀는 두 달 전부터 갑자기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때 송이나가 금방 귀국했고 박도하는 단지 차윤서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수혈을 한번 했을 뿐인데 고작 이 일로 이혼까지 결심한다고? 심지어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병문안도 안 올 정도로 매정하단 말인가?
박도하는 왠지 이 중에서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초조한 표정을 짓자 송이나는 단순히 차윤서한테 팽 당한 거라 여기며 가까이 다가가 위로했다.
“도하야, 윤서 씨가 주제 파악 못하는 건 네 잘못 아니야. 이런 일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심장도 나쁜데 자꾸 화내다가 병이 더 심해지면 어떡해?”
그저 위로의 말일 뿐이지만 이 한마디에 박도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수혈하러 갈 때 차윤서가 뜬금없이 이상한 질문을 했었다.
“물어볼 거 있어. 4년 전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잖아. 그 기증자 성함이 뭐였어?”
“성이 주 씨인 것만 알고 있어.”
“알았어. 고마워.”
“갑자기 그건 왜?”
“그냥 좀 확인하느라고.”
그날 그 장면이 가려진 안개를 걷어내듯 박도하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로 그날부터 늘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자던 차윤서는 갑자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고 고분고분 말만 잘 듣던 그녀가 모든 제안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이혼을 결정한 것도 그때 그 시기였다.
“왜 그래, 도하야?”
박도하는 불현듯 침묵하며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 이에 김민규가 조심스럽게 물으면서 그의 마음을 또다시 뒤흔들어놓았다.
박도하는 감히 더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날 차윤서가 확인하겠다던 일이 과연 뭘까?
그저 아닐 거라고 끊임없이 되뇔 뿐이었다.
송이나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에 마찰하며 끼익 소리를 냈지만 둘은 아예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그녀는 박도하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질문을 이어갔다.
“우리가 단지 친구라고? 넌 친구한테 다 이렇게 잘해주니?”
“친구가 아프면 빈혈기 있는 와이프 끌고 와서 수혈을 시키고 일주일 내내 꼬박 옆에서 병간호만 하면서 수혈한 와이프는 아예 뒷전이야?”
“친구 모임에 참석하려고 와이프 홀로 산정상에 내버려 둬?”
“친구가 신나게 놀고 싶다는 한 마디에 능멸을 당한 와이프를 기어코 자리에 남겨두는 거야?”
“부모님이 대대로 물려받은 보물을 와이프가 아닌 친구한테 덥석 줘? 심지어 친구를 위해서 와이프가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는데 구하지도 않은 거야?”
“와이프 앞에서 대놓고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내다 바치는 거냐고?”
송이나의 폭풍 같은 질문에 박도하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이 차윤서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던지 말이다.
그땐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차윤서가 날 너무 사랑하니 절대 내 곁을 떠날 리 없다고 확신해서 제멋대로 군 걸까? 그래서 나중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때도 몇 마디 말로 달래준 게 전부였었다.
송이나를 오랫동안 좋아해서 거의 습관처럼 그녀를 지켜주었고 잠재의식 속에서 항상 송이나가 첫 순위였다. 차윤서가 떠나간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야말로 진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전에 내 행동 때문에 오해를 빚었다면 사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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