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별장, 강유나는 넋이 나간 채로 바닥에 무릎 꿇고 있었는데, 갑자기 진영재가 그녀한테 따져 묻던 말들이 생각났다-
강유나, 넌 자존심도 없어?
넌 누구의 물건도 아니야, 이렇게 평생 지배당하면서 살래?
강유나가 단식투쟁을 했어도 진영철을 협박할 수 없었다.
수화기너머로 진영철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유나, 철 좀 들어야지, 뭐든 아이를 위해서 생각해."
그는 아주 싸늘하게 말했는데 예전에 다정하게 부르던 말투가 아니라 그녀가 마음대로 자신을 괴롭혀도 된다는 말투였다.
전에는 김선영이 미친 듯 난리 쳤지만 그녀가 죽자 진영철은 아예 연기도 하지 않았다.
강유나는 눈이 새빨개졌다. 아이 말이 나오자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배를 내려다보았고 원망에 가득 차서 말했다.
"그래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 엄마 유골 돌려줘요."
그녀는 진영철이 왜 그녀의 배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진씨 가문의 아이를 낳아주려고 하는 여자들이 가득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씨 가문에서 뭘 하든, 그녀의 조건은 딱 하나였다, 김선영의 유골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혼이 고향에 묻혀야 제대로 안정되는 거였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와 남동생의 시체가 아직 고향의 밭에 묻혀 있었고 김선영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영철이 냉담하게 말했다.
"강유나, 아이 잘 지켜, 아이 낳으면 그때 다시 달라고 해."
그게 조건이었다.
강유나는 화가 나서 휴대폰을 바닥에 던졌다. 그녀가 전에 신고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하인들도 그녀를 방관하기만 했다.
사흘이 지났고 김선영을 하장하는 날이 되었다.
늦가을 아침, 하늘이 우중충했다. 강유나는 삐쩍 말랐고 날짜를 세느라 밤새 잠에 들지 못했다.
아침 일찍 하인들이 아직 자고 있었고 아무도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침안갯속에서 뒷마당에 있는 창고로 향했고 거기서 한쪽 모서리가 깨져 있는 낡은 놋대야를 찾아냈다.
그녀는 이곳을 나갈 수가 없었다. 그제야 그동안 자신이 사생활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영재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강유나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오현우한테 부탁해서 종이돈을 구해달라고 했다.
오현우는 아주 빨리 도착했고 그녀의 낯빛이 안 좋은 걸 보고는 위로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요, 지금은 당신 건강이 더 중요해요."
강유나는 노란 종이를 건네받았고, 자연스럽게 앞마당에 세워진 차를 보았는데 잠시 망설이다가 간절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불길에 닿기도 전에, 누군가 먼저 주워주었다.
강유나는 멈칫했고 하인인 줄 알고 나지막하게 "감사해요"라고 했는데 머리를 들자 깜짝 놀랐다.
안개를 등지고 있어서 어두웠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했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역력했다.
"조심해."
진영재는 반쯤 타버린 종이돈을 놋대야에 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손 데겠어."
강유나는 멈칫했고 단번에 코끝이 찡해 났고 순간 원망스러운 느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네가 왜 왔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노란 종이를 진영재의 얼굴에 던졌다.
"꺼져!"
욕을 먹어도 진영재는 화를 내지 않았고,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모두 놋대야에 던졌는데, 순간 불길이 높이 솟았다.
그러고는 그는 일어서 손을 툭툭 털고는 강유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오던 길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넌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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