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선생님, 혹시 지금 저한테 사과라도 하시려고요?”
“그런 거라면 미리 사양할게요. 전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생각하면 되니까요.”
강서윤의 말에 허남준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장수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강서윤 씨, 당신 진짜 양심도 없어요?”
“우리 사부님은 어제 수술도 미루고 강서윤 씨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곁을 지켰어요.”
“그런데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예요?”
장수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강서윤은 정말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강서윤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반박했다.
“제가 이러면 안 되는 건가요?”
“허 선생님이 거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결국 당신의 그 사부님이 저한테 전화를 했기 때문에 제가 사고를 당한 거잖아요.”
강서윤의 말이 떨어지자 허남준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나를 믿지 않는구나.’
허남준은 깊이 실망했다.
그리고 장수연 역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강서윤 씨, 사부님이 여기 오신 건 그 문석진이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그 사람이 다리를 다쳤다는 것도 다 연기였어요. 당신을 속이려고 만든 거라고요.”
“그런데도 강서윤 씨는 아직도 그런 인간을 믿으세요?”
장수연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강서윤에게 그런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허남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래요? 정말로 문석진이 거짓말을 했어요?”
허남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직접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시스템에 그 사람의 입원 기록은 없었고요.”
그러나 강서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허남준 씨, 제가 당신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네요.”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남을 모함하는 재주가 있었나 봐요?”
강서윤은 더 이상 허남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허남준의 눈빛이 서서히 흔들렸다.
‘이제는 정말로 믿음을 잃었구나.’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까.”
허남준은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섰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보다 이사회에서 뭐라고 했어?”
강서윤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자 류민희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시 네 말이 맞았어.”
“이사회 쪽에서는 빨리 널 돌아오게 만들고 싶나 봐.”
“근데 네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대체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강서윤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월말이 되어야 퇴원할 수 있어.”
“석진이는 어때?”
그녀가 문석진의 이름을 언급하자 류민희는 침묵했다.
그리고 강서윤은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류민희는 뜻밖에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 한번 시켜 보지 뭐.”
“하지만 이사회가 쉽게 받아들이진 않을 거야.”
류민희는 더 이상 강서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강서윤이 직접 겪어봐야 깨달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석진이 얼마나 무능한지, 분노한 이사회가 문석진을 얼마나 가차 없이 몰아낼지를.
그렇게 되면 강서윤도 더 이상 문석진을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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