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를 걷던 허남준은 장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됐으니까 우리는 돌아가자.”
그는 마치 짐을 덜어낸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장수연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책하고 있었다.
“사부님, 강서윤 씨가 혹시 무리한 조건이라도 내건 거예요?”
“제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걸까요?”
그녀의 얼굴에는 후회와 실망이 서려 있었다.
허남준은 장수연을 한 번 힐끗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강서윤 씨가 그 정도 말에 휘둘릴 사람은 아니야.”
그러자 장수연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돼요.”
“사부님, 저 여자 절대 좋은 사람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사부님을 붙잡아두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허남준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붙잡아둔다고 해도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그냥 전남편일 뿐이고 위자료도 넉넉히 받았어.”
“더 이상 신경 쓸 일도 없어.”
허남준의 말에 장수연은 오히려 더 의아해졌다.
“그래서... 강서윤 씨가 뭐라고 했는데요?”
그녀의 눈빛은 의아함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허남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짧게 대답했다.
“나한테 자기 좀 돌봐달라고 하더라.”
그 순간, 장수연은 충격을 받은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뭐요? 그 여자 진짜 뻔뻔하네요.”
그녀는 허남준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이없어했다.
“아니, 그때 그렇게 끝내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사부님을 부려 먹겠다고요?”
“대체 무슨 속셈이죠?”
장수연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이건 대놓고 사부님을 괴롭히겠다는 거잖아!’
허남준은 장수연의 반응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번 일은 병원 측 책임도 있어.”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병원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허남준은 자신이 나서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장수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제가 그 여자는 만만치 않다고 했잖아요.”
그러자 문석진은 더욱 흥분했다.
‘이 자리를 차지하는 기분... 역시 다르군.’
그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자리에 앉아 보며 희열을 느꼈다.
류민희는 그런 문석진의 속내를 간파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은 부리지 마세요.”
“당신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제가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만약 선을 넘는 행동을 한다면 바로 저지할 거예요.”
류민희의 경고가 끝나자 문석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류 비서님, 서윤이가 절 이 자리에 앉힌 이유는 이사회를 속이기 위해서잖아요.”
“제가 서윤이를 실망하게 만들 짓을 할 것 같습니까?”
그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류민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이 계획...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시각, 병원에서는 강서윤이 평소와 달리 조용히 여유를 즐겼다.
예전처럼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식사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도 모르게 장수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장수연 씨도 저랑 같이 한 그릇 하실래요?”
그때, 강서윤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장수연에게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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