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허남준은 강서윤의 대답을 기다렸고, 강서윤은 눈앞에 놓인 서류만 바라보았다.
퇴원하면 병원과 아무 상관도 없을 거란 생각에 강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명할게요. 석진이 일이 더 중요해요.”
다급하게 말하는 강서윤을 보며 허남준은 침묵을 지켰다.
만감이 교차했다.
문석진을 위해서 강서윤이 이렇게까지 한다니.
일단 봉합하면 그 고통은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그렇게 말한 후 허남준이 떠나고 류민희는 무기력한 눈빛으로 강서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서윤아, 너 정말 문석진 때문에 이사회 전체에 반기를 들 생각이야?”
류민희가 돌아봤지만 강서윤은 고개만 끄덕였다.
“석진이는 원래 혼자였잖아. 그러니 더더욱 내가 도와줘야지. 게다가 이건 애초에 내 잘못이니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해.”
류민희는 그저 깊은 눈빛으로 강서윤의 초조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윤아, 문석진의 모든 게 결국은 너한테서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류민희가 떠보자 강서윤은 얼굴을 찡그렸다.
“민희야, 설마 아직도 석진이를 의심하는 거야? 석진이한테서 희망을 보아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스럽네.”
강서윤이 손을 내저었다.
“넌 먼저 나가서 기다려.”
강서윤은 싸늘한 얼굴로 류민희와의 대화를 거부했고 이 말을 들은 류민희의 얼굴은 침울했다.
돌아온 허남준은 때마침 복도에 있는 류민희와 마주쳤다.
“이건 그 쪽한테 줄게요. 12시간만 버틸 수 있고 그 뒤엔 병원으로 돌아와야 해요.”
류민희는 허남준이 건네는 주사기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받았다.
“너한테 달렸지. 환자한테 좋게 대해.”
장수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윤은 별장 대신 먼저 회사로 향했다.
마침 퇴근 시간이 지나 회사는 텅 비어 있었다.
“여기 최근 서류와 계약서들이 있어. 별문제 없으면 돌아가자.”
류민희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강서윤이 왜 갑자기 회사로 왔을까, 문석진을 만나러 별장부터 갈 줄 알았는데.’
“괜찮아. 주사기 놔두고 가. 오늘 밤은 회사에 있을래.”
말하며 컴퓨터를 켠 강서윤은 컴퓨터에 깔린 몇 개의 게임 소프트웨어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허남준 씨가 잘 쉬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어떻게 널 회사에서 밤을 새우게 해?”
류민희가 강서윤을 설득하려 했지만 강서윤의 태도는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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