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진홍월은 자신이 명광궁에 들어선 이래로 단 한 번도 강희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오너라.”
강원주는 못마땅하다는 듯 소리쳤다.
강희진은 아무렇지 않은 낯빛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두 사람 앞에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께서 제 얼굴과 이 계집의 용모가 닮은 것을 걱정하셔서 궁 안에서 행여 오해를 살까 염려되어 가면을 하나 내리셨습니다. 이제는 폐하를 모실 때를 제외하곤 늘 저것을 착용하게 되어 있지요.”
진홍월의 의아한 낯빛을 보고 강원주는 곁에서 친절한 척 설명을 덧붙였다.
“그랬느냐.”
진홍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몸을 돌려 강희진을 훑어보듯 바라보았다.
“가면이 정녕 잘 만들어졌구나. 네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들으니 아버지께서 묘족 상인을 따로 불러들여 사오신 거라 하더군요. 저도 꽤 마음에 들어요. 원래 이 계집의 얼굴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지금은 한결 편안하네요.”
강원주는 턱을 들어 올리고는 스스로 만족한 듯했다.
“그러하구나.”
진홍월도 나긋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리 말하며 그녀는 눈길을 슬쩍 강희진에게 던졌는데 그 안에 담긴 것은 경멸이었다.
허나 강희진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강상목과 진홍월. 그 둘은 똑같이 교활하고 독살스러우며 간사한 얼굴 뒤에 칼날을 숨긴 자들이었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다.
다만, 강상목은 조정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남기 위해 겉은 부드럽고 인자하게 꾸며 왔다면 진홍월은 달랐다. 그녀는 속내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기꺼이 독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런 강상목을 외인은 덕망 높은 문신이라 여기고 자비로운 군자로 칭송하지만 그 실상은 무고한 이들의 피를 손에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였다.
그런 진실을 강희진은 이미 수없이 목도해 왔다.
“너희는 모두 물러가거라.”
진홍월은 곁을 지키던 궁인들을 물려보았다.
순식간에 넓은 전각이 텅 비고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내가 이리 왔건만 무릎조차 꿇지 않느냐? 궁 안에 며칠 지내더니 제법 간덩이가 부은 게냐?”
아까까진 사람들이 있어 체면을 지켰던 그녀가 외인이 물러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강희진은 아무 말 없이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진홍월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네 어미는 아직도 정승댁에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강희진의 어머니를 입에 올리자 강희진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녀는 급히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부인, 하늘이 아실 것입니다. 전 언니와 강씨 가문을 위해 한 치의 사사로움도 품지 않았어요. 그저 하루라도 빨리 대감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을 뿐이에요. 어머니와 함께할 날을 앞당기고자 함이 제 유일한 바람이고요.”
그녀의 말투에는 안절부절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온몸이 떨리는 듯 보였다. 마치 진홍월의 말 한마디에 진심으로 겁을 먹은 양했다.
진홍월은 그 모든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오늘은 강희진의 속내를 떠보려는 것이었다. 그녀가 여전히 어머니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 줄만 잘 쥐고 있으면 언제든 다시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진홍월에게 있어 강희진은 그저 부리기 좋은 개 한 마리. 그리고 그녀의 어미는 그 개의 목줄이었다.
목줄만 놓지 않으면 개가 어디로 가겠는가.
강희진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진홍월이 미끼를 물자 그녀의 눈매에 한 줄기 조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부디 부인께서 저의 효심을 가엾게 여기시어 제 어머니를 너그럽게 돌보아 주시길 바라요. 어머니는 병약하여 더는 고초를 견디지 못할 몸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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