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늙은 요부가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강상목의 마음이 누그러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진홍월은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더는 강희진에게 곱게 대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도 잊지는 말거라. 혀 몇 마디 놀리고 옷 몇 벌 벗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거라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일을 그르치면 너도, 네 어미도 그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강희진이 기뻐하는 꼴을 차마 못 본 진홍월은 굳이 찬물을 끼얹고야 말았다.
“명심하겠습니다.”
강희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분고분했고 아무리 모욕을 주고 깔보아도 반항 한 마디 없이 받아넘겼다.
“내 부모님께서 네 어미와 상봉할 기회를 허락하신 것은 너희 모녀에겐 천지의 은혜라 할 일이야. 이리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어서 어머니께 고개 조아려 감사를 드려라.”
강원주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거칠게 명을 내렸다.
“대감과 부인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 정성을 다하여 맡은 바를 성심껏 수행하겠어요.”
강희진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예를 올렸다.
강상목이 감정에 치우쳐 그녀와 어미를 만나게 하려 했을 리는 만무하다. 기어이 이 만남을 허락한 데엔 반드시 그 나름의 이득이 있거나 그녀를 경계한 까닭이 있으리라.
결국 각자의 이익을 따진 셈이라면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할 것도 못 되는 일이었다.
“이 차가 왜 이렇게 식었지.”
진홍월은 찻잔을 살짝 기울이며 그 시선을 강희진에게 슬쩍 던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부인.”
강희진은 즉시 그 뜻을 알아채고 몸을 돌려 전각 밖으로 나섰다.
“어머니, 아버지께선 대체 왜 강희진과 그 어미의 상봉을 허락하신 걸까요? 저 아이, 궁에 들어온 지가 언제인데 배라도 불러오는 기색이 없잖아요. 하는 일이라곤 제 속을 긁는 것뿐인데, 아버지께선 그걸 두고 잘하고 있다 하시니 원...”
강희진이 나가기가 무섭게 강원주는 꾹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나도 네 생각과 다르지 않다. 허나 아버지께서 이미 결정을 내리신 일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지 않느냐.”
진홍월은 한숨을 내쉬며 강원주의 손을 잡았다.
“지금 네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저 계집이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낳도록 독촉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아버지가 조정에서 너를 든든히 밀어주신다면 이 후궁의 자리는 누구도 너를 흔들 수 없을 것이다.”
그 말 끝에, 진홍월은 다시 음산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
“강희진이든 그 어미든, 네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 그건 내가 장담한다.”
비명이 터졌고 강희진은 반사적으로 손을 움켜쥐며 몸을 뒤로 물러섰다.
“일을 하는데 손발이 저리 허술해서야 되겠느냐!”
진홍월은 탁자를 쾅 하고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강희진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이 제 부주의입니다. 부디 부인께서 용서해주시기를 바라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하며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흥, 내가 너에게 독을 내린 게 못마땅하여 일부러 나를 데우려 한 것이겠지!”
진홍월의 눈매는 살기 서렸다.
“감히 그런 마음은 품은 적이 없습니다.”
강희진은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몸을 낮췄다.
“여봐라! 이년을 당장 나뭇간에 가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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