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진의 목소리는 낮고 깊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강희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기연 앞에서 자신을 벌주더니 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강희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 자리는 내가 직접 올려준 것이다. 그러니 조금 제멋대로 굴어도 괜찮아. 허락하는 것이니.”
선우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입술이 강희진의 귓가에 닿아 말을 할 때마다 살짝 드러난 치아가 귓바퀴를 스칠 듯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이 붉어지며 강희진은 순간적으로 선우진의 품속으로 파고들듯 고개를 더 깊숙이 묻었다.
그제야 선우진이 자연스럽게 손을 풀었다.
조금 전은 분위기가 너무 아찔했다. 가까스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강희진은 선우진이 무서워 황급히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 궁에서 누구든 상관없지만 숙빈만큼은 건드리지 마라.”
선우진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강희진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다시 마주했을 때 얼굴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불안한 표정뿐이었다.
“소첩, 폐하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마땅히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괜히 말썽을 부리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소첩이 경솔했습니다. 바라건대 폐하의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몸을 살짝 숙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넓은 외투에 몸을 한껏 웅크린 모습이 더욱 가녀려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우진의 눈빛이 희미하게 연민으로 물들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나를 두려워하게 된 거지?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나?”
주변을 감싸던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강희진은 그만 참지 못하고 가볍게 재채기를 했다.
“폐하, 곧 비가 내릴 듯합니다.”
정허운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알렸다.
선우진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후, 자연스럽게 강희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았다.
선우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몸을 기울여 강희진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좋아. 그런데 궁금하군. 어서전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그 말에 강희진은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폐하의 위엄을 가진 이였지만 하는 행동이며 말투는 그저 능글맞은 한 남자일 뿐이었다.
비록 선우진과 여러 차례 밤을 함께 보냈지만 강희진은 여전히 그에게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한 시간 후 어서전으로 와라.”
선우진이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덧붙였다.
“그리고 그려오라고 한 그림도 가져오도록.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확인해 볼 테니까.”
목소리는 한껏 낮게 깔려 오직 강희진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위에는 궁인들이 가득했다. 강희진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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