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의 목소리는 나른한 듯 들렸으나 그 말 속에 감춰진 의도는 날카로웠다.
강희진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숙빈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영녕궁에 시녀가 부족하니 오늘부터 넌 날 모시도록 하여라.”
강희진이 선뜻 대답하지 않자 숙빈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어찌된 일이냐? 설마 내가 탐탁지 않다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지금은 일이 더 커지는 걸 피해야 했다. 숙빈을 노하게 하면 강원주까지 위험에 빠질 터였다.
강희진은 지체할 새도 없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숙빈 마마, 송구하옵니다. 그저 제가 미천하여 마마를 모실 자격이 없다고 여겼을 뿐이옵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만일 이대로 숙빈에게 붙잡힌다면 강원주는 물론 그녀 자신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할 것이었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강희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내가 가라 하면 가는 것이지, 감히 명을 거역하려는 것이냐?”
숙빈의 목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아니면 명광궁의 그 여우뿐만 아니라 시녀들까지도 날 우습게 아는 것이더냐?”
그 기세에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겠사옵니까.”
강희진은 머리를 더욱 깊이 조아렸다.
숙빈은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좀처럼 번복하지 않는 성미였기에 이제 와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강원주가 어떻게든 그녀를 돌려가려 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강희진이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덧 영녕궁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녀의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소첩, 폐하를 뵙사옵니다.”
다음 순간, 강희진은 거칠게 팔을 잡아끌려 앞으로 나가떨어졌다. 휘청이는 몸을 간신히 가누고 정신을 차리려던 순간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백단향과 함께 은은한 화장품 향이 뒤섞여 있었는데 아마도 오늘 아침 선우진이 급히 궁을 나서느라 향을 씻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강희진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소첩이 방금 길에서 이 아이를 보았는데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그만 데려오고 싶어졌사옵니다. 하지만 알아보니 민빈의 시녀라 하여 소첩이 직접 명광궁까지 찾아가 민빈에게 허락을 구하려 하였사오나 마침 폐하께서 이곳에 계시니 차라리 지금 여쭙는 것이 더 빠를 듯하여 청을 드리옵니다.”
숙빈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조리 있었고 허점을 찾을 수 없었다.
“어찌나 마음에 드는 궁녀이기에 마마께서 직접 사람을 데려가려 하셨습니까?”
양현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강희진을 흘끗 바라보았고 그의 시선에 그녀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제발 강원주가 어서 와야 하는데...’
속으로 애타게 기도하는데 선우진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과연 어떤 궁녀이기에 숙빈이 직접 구하려 하는지 궁금하군.”
...정말 이렇게까지 일을 키워야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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