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주성호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는 장미숙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안심시키듯 말했다.
"미숙아, 역시 네가 이해심이 많구나. 걱정하지 마. 너희 모녀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절대 너와 유리를 서운하게 하지 않아."
"나도 알아, 오빠. 그런 말까지 안 해도 돼. 난 오빠를 믿어."
장미숙은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숨기며 다정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이 주제를 빨리 넘기고 싶었다.
계속 이야기하다가 혹시라도 주성호가 정말 추영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과 강유리를 내쫓겠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
주성호가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장미숙은 재빨리 도시락을 들고 소파 쪽으로 향하며 활짝 웃었다.
"오빠, 그런 얘긴 그만하고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배고프지? 우선 뭐라도 먹고 다시 일해."
아침에 추영자와 그렇게 실랑이를 벌였으니 주성호는 도무지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장미숙의 기대 어린 시선을 보고는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그는 소파에 앉으며 소매를 걷어 올리다가 테이블 위를 힐끗 보았다.
모두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주성호가 장미숙을 바라보며 한 마디 칭찬했다.
장미숙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나 이어진 말에 그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젠 이럴 필요 없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비서한테 시키면 되니까 굳이 회사까지 올 필요 없어. 괜히 안 좋은 소문만 나."
마지막 말이 떨어지는 순간 장미숙의 평정심이 흐트러질 뻔했다.
그녀는 분노와 불안감을 억누르며 애써 감정을 감추려 했지만 마음속엔 실망과 공포가 엄습했다.
그동안 주성 그룹을 여러 번 방문했건만 한 번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왜 하필 오늘?
오늘은 왜 그녀가 회사를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진 걸까?
혹시 추영자 때문인가?
그녀가 다시 회사에 오는 걸 추영자가 볼까 봐?
그리고 곧장 빠른 걸음으로 회사를 떠났다.
...
점심을 먹은 후, 주경민은 일이 있다며 병원을 나갔다.
심자영은 그가 어디를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 묻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병실에 남아 오전에 뜨던 장갑을 다시 들었다.
장갑을 다 뜬 후 심자영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고 다시 실뭉치를 꺼내 이송백에게 새 목도리를 떠 줄 준비를 했다.
그때 병실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주경민이 돌아온 줄 알고 고개를 들었는데 뜻밖에도 병실에 서 있는 건 강도현이었다.
심자영은 잠시 멈칫했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도현 씨! 어떻게 왔어요?"
혹시 아까 화가 나서 떠난 건가 싶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강도현은 순간 얼어붙었다가 다시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목덜미를 긁었는데 그의 검은 머리카락 아래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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