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 집안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서하린은 초조하게 소파에 앉아 손바닥을 깊이 파고드는 손톱도 잊은 채 시뻘겋게 물든 손을 마주한 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 듯 오직 벽에 걸린 시계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땡.”
눈앞에서 시곗바늘이 새벽 열두 시에서 아침 일곱 시로 넘어가는 순간 입곱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문이 열리자 한태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고 어두운 눈빛.
눈에 서린 거친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서하린의 등골이 싸늘해졌다.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차오르며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이 퍼졌다.
가정부가 내민 가죽 채찍을 받아 든 한태훈은 말없이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서하린.”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갑게 들렸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너 때문에 하마터면 연희의 뱃속의 아이가 잘못될 뻔했다고.”
‘아이?’
서하린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차연희가 임신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곧 정신을 차렸다.
지난 생에도 정확히 이 시기에 그녀가 임신했다.
이번 생에서 차연희가 한태훈의 해독제가 되었으니 아이를 가지는 사람 역시 차연희일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
한태훈은 이미 손에 쥔 가죽 채찍을 높이 들고 있었다.
그 눈빛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하린은 붉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난 웨딩드레스에 손댄 적 없어요. 연희 언니를 해칠 생각조차 없었어요.”
“납치 사건부터 연회에서 갑자기 등장한 연애 편지까지 그리고 오늘의 드레스까지... 이 모든 게 정말 우연 같지 않아요?”
그녀는 기대했다.
평소 신중한 한태훈이라면 이 모든 사건이 석연치 않다는 걸 깨달았을 거라고.
하지만 한태훈은 차갑게 되물었다.
“그럼 네 말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전부 연희가 너를 모함하려고 꾸민 짓이라는 거야?”
그 말에 서하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난 연희를 사랑해. 결혼할 사람도 연희야.”
“그런 연희가 대체 무슨 이유로 널 함정에 빠뜨려?”
서하린은 입을 열려다 멈췄다.
그것이야말로 그녀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 말을 끝맺기도 극심한 고통이 몸을 덮쳤다.
언제 채찍을 올렸는지도 모르게 한태훈은 그녀를 향해 가차 없이 첫 매를 내리쳤다.
“서하린!”
그의 목소리는 깊고도 냉혹했다.
“끝까지 정신 못 차리네.”
순간, 서하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맺혔다.
차연희.
그는 언제나 그녀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도 한태훈이 자신을 믿어줄 거라 기대한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거친 손길이 그녀를 덮쳤다.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달려와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서하린, 네가 한 짓 인정해?”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채찍이 내려왔다.
서하린은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웅크렸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입을 닫은 그녀를 보며 한태훈의 눈빛이 더욱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또 한 번의 매질.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 잘못을 인정하냐?”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런데 왜 죄를 인정해야 하지?
그녀의 태도에 한태훈의 얼굴에 서린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쥔 채찍을 다시금 휘둘렀다.
“팟! 팟!”
그 순간, 살갗이 갈라지고 피가 스며 나왔다.
그러나 서하린은 끝까지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그녀의 등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을 무렵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집사가 한태훈의 손목을 붙잡았다.
“됐어.”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는 무심하게 덧붙였다.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연희가 요즘 태교에 신경 써야 하는데 네가 여기 있으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가방을 그녀에게서 빼앗듯 받아 들었다.
“공항까지 데려다 줄게.”
서하린은 반박하지 않았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차는 빠르게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서하린은 말없이 가방을 챙겼다.
그때서야 한태훈이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는 비행기야?”
서하린이 대답하려는 찰니 한태훈이 한 발 앞서 냉담하게 선을 그었다.
“가까운 도시 몇 군데 돌아다니면서 놀다 와.”
“너무 멀리 가지 마.”
그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결혼식 끝나면 내가 다시 데리러 갈 테니까.”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리고 더 이상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짐을 끌고 묵묵히 출국장으로 향했다.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주저 없이.
한태훈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다.
손끝이 떨렸지만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깊이 숨을 들이쉰 뒤 단호한 걸음으로 탑승 게이트를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데리러 온다고?’
‘그럴 필요 없어요. 한태훈 씨.’
‘다시는 당신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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