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성이 말을 마치고 문가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원래는 문 간호사랑 데이트 갈 줄 알았어요.”
진수빈이 곧바로 받아쳤다.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
문가영은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어제 일로 진수빈에게 피해를 준 건 사실이지만, 그가 그들을 그저 귀찮은 문제로만 본다는 걸 깨닫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입술을 깨물던 문가영은 속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밤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낮보다 적은데 오늘 밤에 여러 환자에게 급격한 증상 변화가 생길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간호사들은 복도에서 뛰어다니며 분주했다.
간신히 새벽이 되어 교대 시간이 되자 함영희는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문가영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집에 가기 싫어. 그냥 병원에서 자고 싶어. 오늘 밤에도 또 야간 근무라는 생각만 하면 정말 힘들어.”
문가영 역시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위장염은 원래 낫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젯밤 한밤중까지 바쁘게 일하며 쉬지 못하니 또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너무 바빠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위약 한 알을 찾아 삼켰다.
그런데 지금은 약효가 다한 것인지 통증은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
문가영은 참지 못하고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함영희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돌아보고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가영 씨,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 잠깐만, 내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
문가영은 이미 말할 힘도 없어 그냥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을 뿐이었다.
휴게실 문이 다시 열리며 무게감 있는 발소리가 났다. 힘겹게 얼굴을 든 문가영은 진수빈이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미간은 꽉 조여 있었고, 까만 눈동자에는 억눌린 듯한 차가움이 가득했다.
함영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진 선생님, 문 간호사 좀 봐주세요.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문가영이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냥 속이 안 좋아서요...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진수빈이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도 위가 아프다고 했잖아.”
문가영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통증을 참기 위해 옷깃을 움켜쥐고 버티려 애쓰는 걸 보며 진수빈이 말했다.
“몸이 안 좋은 줄 알면서 왜 병원에 왔어?”
문가영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로 희미했고, 얼굴은 종이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는데 몸도 휘청이고 있었다.
진수빈은 그녀의 말을 듣고 미간을 더욱 찌푸린 채 이유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문가영의 허약해 보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그의 깊은 눈동자는 점점 어두워졌다.
...
결국 함영희가 문가영을 동행해 아래층에서 검사를 받았고, 급성 위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응급실 의사가 문가영에게 경고했다.
“젊은 사람이 몸조심해야 해요. 나중에 위천공으로 악화하기라도 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문가영은 수액을 맞아야 했고, 함영희가 그녀를 배려하며 곁을 지켰다.
“미안해, 가영 씨, 내가 진 선생님을 부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냥 두 사람이 연인 사이니까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서...”
얼굴에 미안함이 역력했다.
사실 그녀는 문가영과 진수빈이 연인 사이인 만큼 당연히 진수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와서는 문가영을 꾸짖기만 할 줄이야...
문가영은 고개를 저었다.
진수빈의 성격을 잘 알기에 남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괜찮아. 영희 씨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도 돼. 나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까."
함영희는 단호히 거절했다.
“안 돼! 가영 씨 혼자면 분명 불편할 거야. 여기서 쉬면서 지켜볼게. 혹시 뭐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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