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점심, 이가인은 또 한 번 정승진의 부모님과 만나게 되었다.
정영훈과 장윤주는 정승진의 생일이라는 명목으로 찾아와놓고 눈길은 이가인과 주연진에게만 주었다.
그들은 각자의 고향 특산물을 한가득 사 들고 온 것은 물론이고 따로 이가인과 주연진을 위한 선물까지 챙겨왔다.
두 사람 모두 말은 정승진이 반년이나 신세를 진 것에 감사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식사 분위기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자리라기보다 상견례 쪽에 더 가까웠다.
식사 자리에서 양쪽 모두 암묵적으로 이가인과 정승진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거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현재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눌 뿐이었다.
굳이 지난 일을 들먹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양쪽 모두 상당히 경우가 있는 집안이었다.
주연진은 정승진의 부모님이 머무르는 이틀 동안 가이드를 자처하며 이곳저곳 데리고 다녔고 그들이 돌아갈 때는 유성시 특산품들을 두 박스나 선물해주었다.
정승진은 부모님이 다녀간 뒤로 상당히 들떠있었다. 이가인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듯 출근한 뒤에 조용히 그를 불러냈다.
“우리 사귀는 거 병원 사람들한테는 아직 얘기하지 마.”
그녀의 추측이 맞았는지 정승진은 곧바로 미간부터 찌푸렸다.
“왜?”
“왜긴 왜야.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그러지.”
이가인은 정승진과 연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과 내부는 물론이고 병원 전체가 둘 사이에 대해 뭐라고 할지 예상이 갔다.
이미 혜임에서 한번 겪어봤던 일이기에 그런 피곤함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야.”
“너랑 나, 그리고 장우진 선생님과 예지 씨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몰라.”
“그럼 언제 얘기할 건데? 청첩장 돌릴 때?”
“누가 너랑 결혼해준대?”
이가인이 일부러 새침하게 말하자 정승진이 입을 떡 벌렸다.
“상견례까지 해놓고 이런다고?”
“상견례 하면 다 결혼해?”
“나랑 재미 볼 때는 언제고...”
“너는 내가 다른 여자들 꼬임에 넘어갈까 봐 두렵지도 않아? 막 네 곁에만 묶어두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안 드냐고.”
정승진이 투덜거리며 물었다.
“글쎄, 나는 기본적으로 연인 사이에는 믿음이 첫 번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아무리 내가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한다고 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건 경찰이 와도 못 붙잡아. 만약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아주 잠깐 슬프겠지만 인연이 아니었구나 하고 놓아주는 게 성숙한 어른들의 연애라고 생각해.”
이가인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런 태도가 정승진의 눈에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정승진은 이제껏 여자친구가 없어서 고민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염혜원을 포함해 그를 좋아하는 여자는 흘러넘칠 정도였으니까.
사람들은 그와 염혜원이 여러모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며 천생연분이라고까지 얘기하고는 하지만 염혜원은 정승진과 사귀는 동안 사랑한다는 말보다 자신을 사랑하는지, 평생 자신만 사랑해줄 수 있는지를 더 많이 말하고 또 물었다.
그럴 때마다 정승진은 한결같이 맹세는 사랑하는 당시에만 유효한 거라며 또 평생이라는 건 생각보다 길다는 답을 했다. 맹세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이 염혜원에게는 다르게 들렸는지 정승진이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며 그 이유로 결국에는 바람까지 피웠다.
하지만 이가인은 달랐다. 이가인은 불안으로 인한 회피보다는 직면을 선택하는 여자였고 언제나 자기 마음에 솔직하며 현재 곁에 있는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음 한구석으로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정승진은 그녀의 이런 태도가 안정감이 없다고 느끼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녀가 자신을 버릴까 봐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운 채 주위의 날파리들을 제거하고 전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묶어둘 수 있는 명분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배우자 또는 남편이라는 명분을 말이다.
이혼하는 게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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