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인은 애초부터 정승진과 연애할 생각 같은 건 아주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고현우가 이러니 괜히 심기가 뒤틀려 그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굳이 정정해주고 싶지 않았다.
“너 뭐 정 교수님한테 안 좋은 감정 있어? 그런 거면 정 교수님과 둘이서 해결해. 나한테 와서 이러지 말고.”
“너 정승진 좋아해?”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이제 넌 안 좋아한다는 거야.”
고현우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 정말 강수진과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믿어줄래?”
만약 이가인이 여기서 조금만 더 이성을 잃었으면 아마 그날 그와 강수진 사이의 대화를 그대로 읊어버렸을 것이다.
이가인이 고현우에게 그 얘기를 하지 않으려는 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모욕적인 감정이 몸을 지배할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아도취가 심한 고현우라면 그 말을 듣고 그녀가 한 말이 결국은 단지 화가 나서 홧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이가인은 그런 더러운 기분에 지배당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고현우가 그런 착각을 하는 것도 싫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네가 그래도 양심은 있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해줄게.”
“네가 지금 오해하는 거, 내가 반드시 풀어줄 거야.”
고현우는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건지 자기 할 말만 해댔다.
이에 이가인은 답이 없다는 생각에 이만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과일 배달원이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고현우는 배달원으로부터 과일을 건네받은 후 다시 그걸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문 이중으로 잠그고 일찍 자.”
이가인은 문을 닫은 다음 손에 들린 과일을 바라보았다.
고현우의 손의 닿은 이 과일을 버릴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
저녁 11시 50분.
이가인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병원으로 출근했다.
이틀이라는 휴식일이 있었는데도 기력이 충전되기는커녕 어쩐지 출근했을 때보다 더 피곤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고개를 들어보니 간호스테이션에 앞에 서 있는 고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이에 이가인이 슬며시 다시 뒷걸음질 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고현우가 그녀를 불렀다.
“왔어요?”
“안녕하세요.”
이가인은 표정이 일그러지려는 걸 꾹 참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 잠깐 제 사무실로 같이 가죠.”
“네, 알겠습니다.”
이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현우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교수들 개인 사무실이 모여 있는 복도에 진입하려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정승진과 마주치게 되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여기 병원이야.”
“나 이제 야간 근무로 바뀌었어.”
고현우가 태연한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지난번처럼 누가 너한테 찝쩍대는 등의 곤란한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말해.”
이에 이가인이 이를 꽉 깨물며 되물었다.
“곤란한 일? 네가 지금 이러는 게 날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해?”
“전에는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앞으로는 뭐든 네 위주로 할 거니까 편히 나한테 기대.”
이가인은 그래도 이제껏 표정 관리 하나는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고현우라 그런지 분노가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았다.
“너는 헤어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완벽한 타인이 되지는 못하면 적어도 헤어진 옛 연인을 존중해주려는 성의는 보여야지! 네가 아무래도 내 말을 못 알아먹은 것 같으니까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해줄게. 나는 네가 주는 그 어떤 도움도 원하지 않고 그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아. 나는 너랑 직장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되고 싶지 않다고. 내 말 알아들어?!”
“가인아, 나한테 만회할 기회를 줘. 너한테 상처 주는 일 두 번 다시 없게 하겠다고 약속할게. 그리고 정승진 쪽은 할 수 있으면 아예 무시해버려. 걔는 널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아니니까.”
고현우가 진지한 눈빛으로 이가인을 바라보았다.
“고현우, 나는 불구덩이에 뛰어들지언정 쓰레기 더미에 내 몸을 맡기는 짓은 하지 않아.”
이가인은 차가운 얼굴로 이 말을 내뱉은 후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고현우는 어두운 얼굴로 이를 꽉 깨물었다.
“난 절대 널 정승진한테 빼앗기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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