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회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해당 일은 얼마 안 가 바로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권해솔은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집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정채영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살아. 개를 풀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덕분에 속이 뻥 뚫렸어!”
권해솔은 태블릿을 내려놓은 후 고개를 돌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본가에서 나온 건 대학교를 다 졸업하기도 전이었다.
다들 집 나오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권해솔은 달랐다. 그녀는 집에서 나온 뒤에야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권해솔이 과거의 기억에 흠뻑 젖어있던 그때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정채영이 보낸 것으로 50초나 되는 기다란 음성 메시지였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권해솔은 그녀가 보낸 음성의 절반가량이 다 웃음소리라는 걸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음성 메시지를 들어보니 쾌활한 웃음소리부터 들려왔다.
권해솔은 기분 좋게 정채영과 대화를 나누다 문득 강재하의 얼굴이 떠올라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너 시간 괜찮으면 7년 전에 내가 물에 빠졌을 때의 자료 좀 찾아봐 줘. 그리고 나한테 익명으로 보낸 메일도 조사해주고.”
전화기 너머에서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요즘 또 한가해진 거야? 그래서 또 나 못살게 굴려고 전화한 거야?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그러게 그때 내 말 듣고 대학원 들어갔으면 좋았잖아.”
권해솔이 전화를 건 사람은 임유승이라고 그녀가 대학교 때 알게 된 컴퓨터공학과의 천재였다. 임유승은 하나에 꽂히면 0부터 100까지 꼭 알아야 하는 스타일이라 컴퓨터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 그가 컴퓨터만큼이나 꽂힌 여자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정채영이었다.
임유승은 막 권해솔과 알게 됐을 때 마침 해외에서 돌아온 정채영을 만났다가 첫눈에 반해버렸고 그 뒤로 맹렬한 고백을 퍼부으며 질리도록 그녀를 쫓아다녔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줬을 테지만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정채영이라 그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현재 아직은 친구 사이인 그런 상태였다.
“자료 찾아주면 채영이한테 네 어필 잘해줄게.”
“이보세요. 우리 권해솔 씨가 내 몸값을 제대로 모르나 본데 나한테 일을 맡기려면 적어도 큰 거 한 장은 줘야 해.”
“줄게.”
권해솔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계좌에 100만 원을 입금했다.
“됐네요. 그 돈 받았다가 또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대신 채영이랑 둘이 밥이나 먹게 자리 좀 만들어줘.”
임유승은 피식 웃으며 말하다가 계좌에 돈이 입금됐다는 문자를 받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야, 농담이잖아. 이렇게 막 덥석덥석 돈을 입금하면 어떡해?”
“앞으로도 널 자주 부려먹으려고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 그리고 나 피곤해서 이만 끊을게. 내가 부탁한 거 잊지 마!”
“잠깐...!”
권해솔은 말을 마친 후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침대로 가 털썩 누워버렸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 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잠이 절로 와 그녀는 누운 지 5분도 안 돼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깬 권해솔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권해솔, 너 어디야? 오늘 녹음 있는 날인 거 잊은 거 아니지? 빨리 튀어와!”
권해솔은 그 말에 그제야 오늘 일정이 떠올렸다. 수중에 돈이 있어 그런지 해야 할 일마저 깜빡 잊고 있었다.
“나, 나 지금 가는 길이니까 조금만 시간을 끌어줘!”
권해솔은 간단히 양치만 하고는 서둘러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런데 한시가 급한 그때 하필이면 단지 앞에서 불청객 두 명을 만나버렸다. 모자를 푹 눌러쓰며 못 본 척을 해보려 했지만 권설아의 눈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권해솔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발견한 장윤정이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 다급해진 권해솔이 얼른 뛰어가려는데 때마침 코너에서 회색 후드티에 마스크를 한 남자가 튀어나왔고 그렇게 두 사람은 부딪혀 버리고 말았다.
“윽, 죄송합니다!”
장윤정은 하이힐 소리를 내며 얼른 권해솔의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늦지 말라고 경고했어 안 했어? 너 내가...”
권해솔은 장윤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시선을 온통 자신과 부딪힌 남자의 뒷모습에만 고정하고 있었다.
“권해솔, 너 지금 사람이 말을 하는데 대체 어딜 그렇게...”
“언니, 저 사람 누구야?”
장윤정은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따라오기나 해. 너는 사고를 쳐도 꼭 재이가 온 날에 사고를 치냐?”
‘방금 그 사람 누구지? 분명히 익숙한 냄새가 났는데? 그리고 그 뒷모습도 꼭...’
“권해솔!”
장윤정은 안 되겠는지 권해솔의 손을 잡고 직접 위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권해솔은 녹음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남자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감독님, 괜찮았어요?”
2시간가량의 녹음을 마친 권해솔이 녹음 부스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오랜 시간 녹음을 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다 잠겨있었다.
“내가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은 것 같네요. 좋았어요.”
허재환 감독은 결과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다행히 늦게 도착한 건 어찌어찌 실력으로 커버가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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