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권해솔이 재빠르게 고민재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어차피 아까 손댄 건 강재하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말했잖아, 강재하 씨는 믿을 사람이 못 된다고! 물론 너한텐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막상 자기 뜻대로 되면 널 헌신짝처럼 버릴 거야!”
고민재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어떻게든 경고하려 애썼다.
그러자 권해솔은 성큼 다가서며 작게 말했다.
“목소리 낮춰. 아까 뭐 한 사람은... 나야.”
권해솔의 목소리는 살짝 높아졌는데 기분이 좋은 티가 났다.
이 말을 들은 고민재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충격에 눈까지 깜빡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왜?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비록 내가 강현수한테 7년이나 허비했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살란 법은 없잖아?”
권해솔은 이미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
강재하가 자신을 도운 건 사실이지만 그가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한 건 아니니까.
그저 도움이었다면 자신도 그에 맞게 행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게다가 고민재 말대로 강재하가 여자 친구를 자주 바꾼다 한들 권해솔에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어차피 다 성인이니까 말이다.
“하... 남들이 옆에서 하는 조언 안 들으면 결국 손해 보는 법이지.”
고민재는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다시 실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권해솔은 녹음 작업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서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그제야 휴대폰을 확인한 그녀는 낯선 번호로 온 문자 하나를 발견했다.
[권해솔, 우리 한번 만나자.]
메시지 아래에 적힌 이름을 보고서야 보낸 사람이 박은정임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실험실에서 권설아가 벌인 소동을 박은정도 아마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녀가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한 건지 권해솔은 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나와 가방을 챙긴 권해솔은 박은정이 보낸 주소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골목 안에 위치한 바.
박은정은 당황했지만 곧 침착한 얼굴로 되물었다.
“넌 그걸 알면서도 왜 나를 만나러 왔어?”
도수가 높은 술이 입안 가득 퍼졌고 잠시 숨을 고른 뒤, 권해솔은 겨우 말을 이었다.
“나도 궁금하거든. 너는 왜 날 보자고 한 건지, 대체 뭘 알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날 통해 얻고 싶은 게 있는 건지.”
어차피 7년 전의 일은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다.
지금에서야 증거를 찾아도 박은정에게 큰 타격은 되지 않는다.
“네가 권설아보다 나은 건 없지만 그땐 내게 선택권이 없었어.”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는 세상의 화려함을 한번 맛보면 작은 이익에도 쉽게 끌려간다.
과거 18년 동안 받은 교육이 이건 하면 안 된다고 외쳐도 결국 그녀는 이익 앞에 누군가를 해쳤다.
“지난 7년 동안 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어. 네가 무사하단 걸 알면서도 내 안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어.”
권해솔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연기 좀 그만하고 네 목적이 뭔지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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