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솔이 핸드폰으로 조작을 마치자 강재하는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두 사람 사이에 나눈 대화는 생각할수록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도와주고도 결국 바란 건 그저 차단 해제라니?
강재하가 떠난 후 30분 가까이 권해솔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뭔가 잘못된 건지 곱씹으며 멍하니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바닷바람이 거세게 창문 틈으로 들이쳤다.
막 샤워를 마친 권해솔은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우선 약부터 바르자고 생각하며 연고를 챙겼다.
방 안은 아주 조용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집중해서 발목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장실 쪽에서 쨍그랑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순간, 권해솔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귀 기울여 보니 거울이 깨지는 소리 같았다.
권해솔은 조심스레 옆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집기도 전에 갑자기 방 전체가 정전되었다.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권해솔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고 화면을 켜려던 찰나, 무언가가 휙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차가운 금속 같은 것이 권해솔의 경동맥에 닿았다.
누군가가 그녀의 바로 등 뒤에 있었지만 권해솔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마치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누... 누구세요?”
잔뜩 긴장한 채로 침을 꿀꺽 삼킨 권해솔은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닥치고 내가 숨을 곳 하나만 알려줘.”
남자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낮고도 묘하게 울렸다.
지금 자신의 생사는 이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기에 권해솔은 순순히 남자의 말에 따랐다.
“침실에 가로로 누울 수 있는 장식장이 하나 있어요. 그 안에 들어가면 됩니다.”
남자는 권해솔을 끌고 조금씩 침실 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재하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주위를 한 바퀴 훑으며 확인한 후, 별일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조용히 말했다.
“괜찮네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제야 권해솔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방 안에 잠시 들이닥쳤던 그 남자가 좋은 사람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들을 마주쳤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문을 잠그고 나서 권해솔은 곧장 장식장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허겁지겁 화장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온통 어둠뿐이었고 멀리 등대 불빛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창문을 통해 다른 방으로 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배의 외벽은 매우 미끄럽고 발을 디딜 만한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권해솔은 말없이 방 안의 어지러운 흔적들을 정리하고서야 자신의 목덜미에 희미하게 남은 상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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