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희가 얼른 설명했다.
“정아 씨, 여기는 하선아. 고등학교 때 공부로 선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케케묵은 일이라 신경 쓰지 마요.”
채정아는 덤덤해 보이는 하선아를 보며 서진석의 팔짱을 끼더니 웃었다.
“누가 봐도 우리 오빠 잘났잖아요. 다른 사람이 좋아해 준다는 건 내 안목이 높다는 거 아니겠어요?”
“진석이 그때 열어보지도 않고 바로 찢어버렸다니까요. 보는 사람도 민망할 정도였어요.”
안주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가은아.”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손가은은 안주희가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손가은의 석차는 하선아와 별로 차이 나지 않았고 가끔 하선아보다 더 높은 성적을 거둘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가정형편도 비슷했고 굳이 따지자면 손가은네 집이 더 나았다. 손가은은 자기도 도경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결국엔 대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는데 하선아는 가게 되었다는 것에 시기 질투하기 시작했고 하선아를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올라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대학교만 졸업했어도 얼마든지 하선아보다 더 출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서진석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사실 그날 연애편지를 찢어버렸던 건 집에서 열 받는 일이 있기도 했고 성적 발표도 이상적이지 않아 해소할 구멍을 찾다가 애꿎게 하선아가 걸려든 것이었다.
하선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진석아. 사실 그 연애편지 안민아가 쓴 거야. 나는 대신 전해주는 대가로 4,000원을 받았고.”
친구들은 하선아가 이 자리에서 실토할 줄은 몰랐는지 벙찐 표정이었고 하선아가 쓴 연애편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아, 맞아. 그때 안민아가 진석이 좋아하긴 했어. 나더러 뭐 좀 전해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장인준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자 이진희도 뭔가 생각났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안민아 나한테 우유 사다 주면서 진석이 서랍에 연애편지 넣어달라고 했는데.”
“아, 맞네. 그때 나한테도 돈을 주면서 대신 전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안주희도 그제야 떠올랐다. 사실 그때 안민아를 거절한 건 안민아도 서진석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손가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냐하면 손가은도 안민아가 찾아온 적이 있다는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러네. 그때 안민아가 부탁한 친구가 많았는데 왜 그 연애편지를 선아가 썼다고 소문난 거지?”
이진희가 하선아를 대신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선아가 선금도 물었으니 이진희는 앞으로도 계속 장사를 이끌어서 가고 싶었다.
“그땐 나이가 어려서 뭐만 잡으면 다들 흥분해서 소문내고 다녔잖아.”
서진석이 입꼬리를 당기더니 하선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가은은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많이 마셨고 아까 사람들이 하선아에게 대학 시절을 묻던 게 떠올라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은, 네가 뭔데 대학에 가? 그것도 환도로? 나 너랑 수능 등급 똑같게 나왔거든?”
친구들은 손가은이 술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는 걸 알아챘다.
“손가은, 얼른 앉아.”
이진희가 손가은을 붙잡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술에 취한 손가은이 괴력을 쓰며 이진희를 뿌리치더니 하선아를 향해 걸어갔다.
“너는 부모님이 뼈 빠지게 돈 벌어서 학교 보내주는데 나는 왜 안 되냐고.”
하선아가 그런 손가은을 힐끔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너희 부모님에게 여쭤봐야지. 내가 대학교 못 가게 한 건 아니잖아.”
고개를 숙인 손가은이 하선아의 손에 들린 최신폰을 보며 불만을 쏟아냈다.
“네가 내 운수를 훔쳐 가서 그래. 최신 폰 사면 다야? 누드 사진으로 인터넷 대출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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