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병원 앞에서 택시 잡으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황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금방 끝나니까...”
“정말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주호진이 말을 이으려 했지만 황이진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고는 송유리의 손을 잡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주호진은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병원 밖.
송유리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멀리 보이는 건 병원 로비뿐, 주호진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송유리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이진 언니, 저기... 오늘 언니가 주호진 선생님을 대할 때의 말투가 좀 이상했어요.”
황이진은 앞서 걸으며 병원 주차장을 지나 도롯가에 섰다.
“이상했어? 난 그냥 평소처럼 한 건데?”
송유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늘 언니 도시락 준비하면서 그랬잖아요. 주호진 선생님 심장이 돌덩이라도 언젠간 바늘처럼 뾰족하게 뚫릴 거라고. 그런 성격인데, 아까는 먼저 우리 데려다주겠다고 했잖아요. 그거 보면... 조금은 변한 거 아닐까요?”
황이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잠시 숨을 고르더니 쓸쓸하게 말했다.
“근데 오늘 깨달았어. 나... 그 사람한테 허비할 시간 별로 없더라.”
“갑자기 할머니 일이 터졌을 때, 살려달라고 매달렸는데도 결국 그는 일 핑계 대면서 거절했어.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도 그랬다니까... 그런 사람한테 더는 기대를 걸 이유가 없어.”
황이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나... 그때 거의 무릎 꿇을 뻔했어.”
송유리는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이 일은 본래 황이진이 짊어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건 황이진이었다.
송유리는 조심히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결국엔 와주셨잖아요.”
황이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고 대표님이 전화했으니까 그런 거야.”
송유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서유진의 부탁을 받아, 고인성이 움직였고, 고인성의 요청을 받아 주호진이 결국 수술실에 들어간 거였어... 결국 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상처만 받는 꼴이 되었네...’
송유리는 조심스럽게 황이진의 팔을 끼며 말했다.
“그래도... 어쨌든 일이 잘 풀렸잖아요. 잘 해결되기만 한다면 누가 누굴 위해서든 상관없잖아요?”
“누가 누굴 위해서든?”
“정말 고맙네. 착한 아가씨들이네!”
두 사람은 택시에 올라탔고 송유리와 황이진은 직접 그들을 부축해 도와주었다.
그리고 택시가 멀어질 때까지 둘은 가만히 서서 바라봤다.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꽤 처량한 처지인데 막상 더 힘든 사람을 보면 그래도 도와주게 되네...’
“진짜 안 되겠으면, 우리 그냥 버스 탈까?”
황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송유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 시간에 버스는 이미 끊겼을 거예요.”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걸어갈까? 아니면 좀 더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택시 잡기 쉬워질지도 모르고...”
송유리가 제안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한 대의 포르쉐가 조용히 눈앞에 멈췄다. 차창이 내려가고 운전석 안에서 주호진이 무심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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