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송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무표정하게 서 있다가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인성 씨?’
‘설마... 인성 씨가 올 리가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고인성은 분명 오늘 밤에야 돌아온다고 했었다.
그러니 지금, 그것도 경성예대 학기 말 연극 무대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조명을 등지고 걸어오는 그 키 큰 실루엣은 분명 어딘가 익숙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윤곽이 뚜렷해지더니 마침내 그 도도하면서도 조각 같은, 너무나 잘 아는 얼굴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맞아... 인성 씨야. 진짜 고인성이 왔어!’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솟구쳐 올라 목까지 차올랐다.
“어? 저 사람 고인성 대표님 아니야?”
“진짜네? 어떻게 이런 데에 고 대표님이?”
“고 대표님 우리 학교 주주잖아. 디자인과에 투자한 걸로도 유명하잖아. 그래서 온 거 아닐까?”
“근데... 그건 디자인과 얘기고 여긴 연극과잖아. 고 대표님이 연극과 행사엔 지금껏 한 번도 안 왔는데?”
무대 뒤에서 송유리는 숨죽인 채 무대 아래를 바라봤다.
총장은 고인성을 심사위원석 쪽으로 안내하려 했지만 고인성은 조용히 손짓으로 송유리에게 배정된 앞줄 두 자리를 가리켰다.
총장은 처음엔 의아한 눈치를 보이다가 며칠 전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인사했던 그 학생이 떠올라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이내 고인성과 함께 해당 좌석에 조용히 앉았다.
곧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헐, 고 대표님 지금 송유리 자리에 앉은 거야? 설마 송유리가 초대한 거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유현이 발끈하듯 끼어들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고인성 대표님이 송유리 같은 애랑 무슨 관계가 있겠어? 그냥 다른 자리가 없으니까 앉은 거겠지. 총장 선생님도 같이 앉았잖아? 설마 그분도 송유리 친척이야?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한유현의 말에 주변 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송유리와 총장이 어떤 관계라는 말은 들은 적 없었고, 만약 정말 그런 사이였다면 학생회장 자리가 한유현이 아닌 송유리에게 돌아갔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이었다.
분홍빛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송유리는 궁녀들과 함께 나비를 쫓고 제기를 차며 맑게 웃었다. 고운 웃음 속엔 소녀 특유의 천진함과 싱그러움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전쟁의 북소리가 극장을 흔들며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송유리가 연기하는 공주는 오라버니와 함께 호위무사들의 보호를 받아 도망길에 올랐다.
눈보라와 비바람, 추격자들의 발걸음 속에서 그들의 운명은 알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눈빛은 점차 맑은 소녀에서 단단하고 깊은 여인으로 바뀌었다.
오라버니를 살리기 위해, 그녀는 놀라운 결단을 내렸다. 바로 ‘오라비로 위장’해 스스로를 미끼로 삼는 것이었다.
결국 적에게 붙잡힌 그녀는 정체를 들키게 되었지만, 그녀는 두려움을 감춘 채, 도리어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침상 위, 그녀는 반쯤 내려앉은 눈으로 살짝 웃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요염한 기운이 흐르고, 손끝까지도 계산된 연기였다.
마침내 방심한 적장의 눈앞에서 그녀는 품 안에서 단도를 꺼내 단호하게 가슴팍을 찔렀다.
그녀는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당신을 속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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