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우는 더 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힘들었던 것처럼 꾸며냈다.
“언니가, 언니가 제가 서훈 씨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일부러 다가와서 우리 집안이 좋지 않다며 말했어요. 그리고는 서훈 씨를 유혹하려고 했고요.”
그녀는 설형우에게 설인아가 이토록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설연우는 계속 말을 이어가면서 훌쩍거렸다.
“서훈 씨는 결국 화를 내면서 가버렸어요. 그러면서 아빠한테 설씨 가문의 딸이라면 꼴도 보기 싫다고 전하라고 했어요.”
화가 난 설형우는 곧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기둥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이미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설형우는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빠득 갈았다.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다니! 내가 왜 저런 것을 낳았는지 몰라!”
설연우는 기세등등한 표정을 하면서 여전히 억울한 척 연기를 했다.
“죄송해요, 아빠. 다 제가 못나서 서훈 씨와 협력 건도 못 따낸 거예요.”
겨우 진정한 설형우였지만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분노가 느껴졌다.
“네 탓이 아니다. 다 설인아 그 미친X이 망친 게지. 쯧, 그때 제 엄마와 함께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설인아를 욕하고 있었다. 설연우가 자꾸만 달래주는 설형우도 어느 정도 진정하게 되었고 심지어 설연우가 참하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설형우가 자기 뜻대로 설인아를 욕하고 증오하자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설인아, 네가 지서훈이랑 사이가 좋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어차피 넌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어.'
‘집에서 쫓겨난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집안 배경을 일 순위도 두지 않는 가문이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두 눈은 서늘하게 빛났다.
룸으로 돌아온 설인아와 지서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서훈은 설인아의 안색을 살피다가 물었다.
“그 인간들이 계속 방금처럼 대해왔던 거야?”
설령 이미 조사를 해 보았다고 해도 두 눈으로 직접 설연우의 가증스러운 연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설인아가 그런 집안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설인아는 담담하게 휴지를 뽑아 손을 닦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어투로 말했다.
“괜찮아.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
지난번에 약을 먹이고 나지운의 침대로 데려놓은 것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지영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의아한 어투로 물었다.
지영수와 지서훈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의님, 어디로 가세요. 데려다줄게요.”
하시훈의 집 주소를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설인아는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괜찮아요. 데려다준다고 하셔서 감사하지만 정말로 괜찮아요. 전 소화할 겸 걸어서 돌아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러자 지영수와 지서훈은 서로 마주 보다가 더는 그녀에게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지영수는 웃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동안 정말로 수고 많았어요.”
그들은 설인아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서훈은 여전히 집 밖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설인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전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레스토랑에서 나온 설인아는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식사 자리는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의 조용한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면서 시끄러운 머릿속도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마음도 편안해져 그녀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면서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나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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