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예진은 서둘러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뒀는데도 그에게서 풍기는 옅은 담배 냄새와 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속에 나무 향이 묘하게 섞여 있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공호열이 갑자기 길고 힘 있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권예진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흰 셔츠를 사이에 두고 남자의 체온이 전해졌고 단단한 가슴 근육이 느껴졌다.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긴장해 하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팔에 힘을 더욱 가했다. 남녀의 힘 차이 때문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순진한 척은. 나랑 밀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공호열이 씩 웃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나른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섞여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었다.
“결혼을 강요한 것도 모자라 알아서 제 발로 기어들어 오다니. 그렇게도 나랑 결혼하고 싶어?”
“호열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권예진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러지 말아요. 호열 씨 지금 많이 취했어요.”
공호열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빨간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취하면 더 좋은 거 아니야?”
술을 마시긴 했지만 과음하진 않았다.
할아버지 병세가 위독해지면서 촌뜨기에게 결혼을 강요당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그 생각만 하면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김다윤을 보낸 후 박지석 일행과 술을 두어 잔 마셨다. 평소 자제력이 강한 편이라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았다.
“뭘 하지 말라는 건데?”
그는 짓궂게 웃으면서 권예진의 귓불에 대고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 권예진의 약한 신경을 자극했다.
“지금 이러는 거요.”
권예진은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심장이 쿵쾅거렸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쿵.
그런데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목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그대로 침대에 내팽개쳐졌다.
권예진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몸을 일으키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남자가 왜 이렇게 변덕스러워.’
그때 공호열이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차갑게 명령했다.
“가져와.”
잠시 후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들어왔고 그중 한 명이 술잔을 들고 있었다. 술잔을 본 순간 권예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다윤과 성한빈이 유포리아에서 마신 술 행키팽키였다.
“호열 씨, 무슨 뜻이에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고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공호열은 술잔을 들고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그녀를 침대 머리맡 쪽으로 밀어붙였다.
“다윤이랑 약속했어. 제대로 알아본 다음에 설명해주겠다고. 네가 할아버지 병을 고쳐주는 걸 봐서 끝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어. 이걸 마셔. 그럼 없던 일로 해줄게.”
권예진은 꼼짝도 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는 인내심을 잃은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고 눈빛에도 분노가 가득했다.
권예진은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요.”
그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공호열이 들고 있는 술잔을 빼앗았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공호열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방금 이 여자를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착각일 거야. 그래. 착각이야.’
“무슨 일 있어요?”
공호열이 고개를 돌리자 임길태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도련님, 본가에서 전화 왔는데...”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가뜩이나 권예진의 의술을 의심하고 있었던 터라 임길태의 말을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임길태가 대답하기 전에 험악한 얼굴로 권예진을 보면서 무섭게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집사님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좋은 소식일지도 모르잖아요.”
권예진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임길태를 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깨어나셨나요?”
그녀는 자신의 의술에 자신이 있었다.
공호열은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좋은 소식? 수많은 전문가와 명의들도 고치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거지?’
임길태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본가에서 전화 왔는데 어르신께서 깨어나셨답니다. 근데 정신 상태가 아직 좋지 않아서 푹 쉬셔야 하니 내일 오시라고 하네요.”
그 말에 권예진이 활짝 웃었다.
“할아버지께 내일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공한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공호열의 얼굴에도 기쁜 기색이 잠깐 스쳤다. 권예진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내 실력을 믿지 않더니 지금 좀 무안하죠?”
공호열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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