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복은 성품이 순하고 생김새도 영락없는 선량한 사람 같았다. 말을 할 때마다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강희진은 절로 웃음이 났다.
“며칠씩 신세를 지고 있는데, 언니랑 오라버니께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는 게 마땅하지요.”
강희진은 멀찌감치서 허리를 숙여 밭일을 하고 있는 선우진을 바라보며 속이 다 시원했다.
늘 남 위에 서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가 이렇게 흙 묻히고 땀 흘리는 모습이라니, 조정 대신들이 본다면 어떤 반응일지 실로 궁금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오. 나랑 집사람 둘이 지낸 지도 벌써 여러 해요. 집 안이 이리 북적이기는 오랜만이니,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마운 일이오.”
가을바람이 살랑이는 한낮 끝자락, 노만복은 고개를 들어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들녘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고요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혜란 언니랑 만복 오라버니는 본래 도하 마을 분들이 아니십니까?”
강희진은 아까 그가 한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오. 우리는 형주에서 왔소. 팔 년 전, 형주에 큰 물난리가 나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소. 죽은 사람도 많았고 뿔뿔이 흩어져 결국 남은 건 우리 둘뿐이었소.”
형주는 경성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이 먼 마을까지 흘러온 걸 보면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으리라.
강희진은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명복을 빕니다...”
목이 메어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그녀는 겨우 그 한마디를 꺼냈다.
가족을 잃는 고통이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다. 그들의 상처를 온전히 알 순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오.”
노만복은 강희진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뒤에 들으니, 폐하께서 형주에 큰 둑을 세우셨더이다. 그때는 나도 집사람을 데리고 다시 돌아갈까 했소만 집사람이 옛일을 떠올릴까 두려워 못 가겠다 하여, 이리 머무르게 되었소.”
그는 드물게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듯 조곤조곤 말했다.
“홍수에 목숨을 잃은 백성들을 위해 폐하께서 비석도 세우셨다고 들었소. 백성을 아끼시는 그 마음이야말로 성군의 도리라 하지 않겠소.”
강희진은 문득 선우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일에 대해 그녀도 들은 바 있었다.
팔 년 전, 선우진이 막 황제 자리에 오른 지 반년도 안 되어 형주에 천 년 만의 대홍수가 났다.
그는 이를 훌륭히 수습했고 그 덕에 백성들 사이에서 크게 칭송받았다.
그때 선우진은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그전에는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운 적도 있었다.
만일 황위를 계승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장군이 되어 양현무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터였다.
강희진은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거두었다.
강희진은 당황스러웠다.
“네가 본디 있어야 할 곳이 궁궐 아니더냐?”
선우진은 그녀를 흘끔 보고는 다시 먼 하늘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강희진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다 해도 가을 사냥은 이제 끝날 때였다.
이제 다시 황궁으로, 그 벽 높은 궁궐로 돌아가 또다시 빈번한 궁중 암투와 총애 다툼 속으로 휘말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했다.
“대주국의 황제가 여러 날째 자취를 감췄으니, 더는 숨길 수 없을 테지. 이 일이 세상에 퍼지기라도 하면 큰 혼란이 일고야 말 거다.”
선우진의 말투는 담담했다.
“게다가 짐이 찾고자 했던 자는 이미 찾았으니 말이다.”
“찾으셨다니, 누구를...”
강희진은 무심코 물었다가 스스로 부적절함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선우진은 되레 반문했다.
“정녕 궁금하지 않느냐? 누가 우리를 죽이려 했는지.”
‘우리가 아니라 폐하를 노린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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