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강희진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조심스레 탁윤에게 간청하였다.
“난 이런 일에 관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탁윤은 피식 웃으며 몸을 등받이에 기대었다.
강희진은 그제야 안도하며 다시 그의 뒤로 물러났다.
대주국이든 구월국이든 황족들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자라면 결코 만만할 리가 없었다.
겉으론 한가롭고 무심한 듯 보이는 탁윤이지만 그 속내가 얼마나 깊고 날카로운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어.’
강희진은 속으로 되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갈아입은 탁주옥이 다시 대전에 들어섰다.
여전히 눈이 부실 만큼 선명한 진홍의 복식이었다.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녀는 단상 위에 올라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은 대주국 사람들에겐 생소한 이국의 정취가 가득 담긴 것이었다.
여인의 가녀린 몸놀림, 희고 긴 팔목은 너울대는 옷소매에 감기며 꽃잎 속에서 막 날아오르려는 나비 같았다.
발끝은 가볍게 단상을 딛고 손목에 달린 방울은 피리의 장단에 따라 맑은 소리를 내었다.
소리의 운율은 피리의 빠르기에 따라 잦아들기도 하고 급해지기도 하였다.
어느새 주변의 모든 시선이 탁주옥에게 꽂혀 있었다.
강희진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탁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 춤사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철저히 준비된 자들이었다. 강원주가 감당하기엔 이번 일은 그야말로 전례 없는 위기였다.
강희진은 방금 탁윤이 건넸던 질문을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 찜찜함이 남았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귀를 때리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강희진은 그제야 정신을 돌렸다.
탁주옥은 대중을 향해 단정히 예를 올리고 단상을 내려왔다.
그 찬란한 붉은빛에 누구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하물며 강원주라면 지금쯤 두려움에 눈물이 고였을 것이다.
강희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강원주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오시오.”
그때 선우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강원주는 더는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두 손을 몰래 움켜쥔 채 마치 사형장으로 향하듯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강희진의 예상대로 강원주의 춤은 딱히 나쁘지는 않았으나 특별한 것도 없었다. 경성의 아가씨 중에서도 중간쯤에나 속할 만한 실력이었다.
한 곡조가 끝나자 억지로 짜낸 듯한 어설픈 박수 소리만이 들려왔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실망 어린 시선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강원주는 황급히 예를 올린 뒤, 도망치듯 단상을 내려왔다.
강희진은 다시금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잔잔했다. 그 속엔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한 고요함만이 깃들어 있었다.
“도성 제일의 재녀라 하시기에 몹시 기대했건만, 겨우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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