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윤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더니 거리낌 없이 강원주를 훑어보았다.
강원주는 평생 이런 노골적인 도발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분노가 치솟았고 눈을 치켜들어 탁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상대가 구월국 황자라는 점에 입을 함부로 놀릴 수 없었고 끝내 꾹 참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군자는 사리에 밝다고 하였지요. 민빈께서는 다만 의례상 춤을 올린 것이지, 황녀님과 기량을 겨루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춤을 올리기 전 이미 황자님께도, 황녀님께도 그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하나 이제 와서 승부를 따지시려 한다면, 적어도 미리 그리 말씀하셨어야지요. 저희를 오해하게 만들고 자리의 흥까지 깰 줄은 몰랐습니다.”
탁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원주를 깎아내리는 것은, 곧 강씨 가문은 물론 대주국 전체를 무시한 처사나 다름없었다.
강상목은 끝내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언제 민빈과 겨루겠노라 했소? 대감께서 너무 앞서 나가신 것이 아니오.”
탁윤은 강상목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강상목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도성 제일의 재녀라면 남다른 솜씨쯤은 있어야 할 터. 하나 내가 조금 전 본 바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소. 한데 내가 의문도 제기하지 못한단 말이오?”
탁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강상목을 몰아세웠다.
강상목은 격분하면서도 딱히 내세울 말이 없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전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때 양현무가 책상을 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거대한 체구가 분노를 더해 위압감이 어마어마했고 그 순간 등용전 안 공기조차 얼어붙는 듯하였다.
좌중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자칫 잘못 나섰다가는 화를 입을까 봐 두려웠다.
“대주국에서 황녀님의 춤사위에 사람을 붙여 함께 무대를 꾸민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예를 다한 것입니다. 만일 방금 민빈께서 황녀님을 능가했다면, 그대들은 대주국이 구월국을 짓누르려 한다고 말했을 테지요. 결국 이러나저러나 황자님 말이 옳단 것이 아닙니까? 애초부터 시비 걸 작정으로 온 게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양현무는 점점 더 격노했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탁윤을 노려보았다. 금세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강희진은 정의로운 얼굴을 한 강상목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 위선이 견디기 힘들 만큼 혐오스러웠다.
“두 분 모두 부디 진정하십시오.”
팽팽하게 대립하던 그 순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탁주옥이 입을 열었다.
“저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어릴 적부터 아우를 지극히 아끼시어 성정을 약간은 제멋대로 키우신 면이 있사옵니다. 버릇이 조금 없는 것은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시옵소서.”
탁주옥은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선우진에게 사과를 표했다.
탁윤은 입꼬리를 비틀며 그 말에 썩 내키지 않는 듯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황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가 굳이 더 따지면 도리어 내 그릇이 좁아 보이겠구려.”
선우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대주국 황제 폐하의 아량이 참으로 넓으십니다.”
탁주옥은 계속 선우진과 공손히 응대하고 있었고 정작 시끄러움의 중심에 있었던 탁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흥미롭다는 듯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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