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 밑에서 기어 나온 강원주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먼지투성이에 거미줄까지 엉켜 있었고 화려하던 옷은 흐트러진 채 여기저기 구겨져 누더기처럼 매달려 있었다. 눈빛엔 감출 수 없는 증오가 가득했다.
그 꼴을 지켜보던 궁녀들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지만 실룩이는 입꼬리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강원주는 그대로 침상 위로 몸을 내던졌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이불을 마구 쥐어뜯더니 그 아래 누워 있는 강희진을 향해 주먹질을 퍼부었다.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고 분노와 원한이 뒤섞인 얼굴은 마치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춘희조차도 그 광기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희진은 속으로는 비웃으면서도 겁먹은 듯 몸을 잔뜩 움츠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아, 아파요...”
비록 매를 맞고 있음에도 강희진의 아름다운 자태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보는 이의 연민을 자아냈다.
그러나 강원주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힘을 주어 주먹을 휘두르며 이불 위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방 안은 그녀의 괴성과 강희진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옆에 서 있던 궁녀들은 죄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분풀이하던 강원주는 마침내 손을 거두었다. 하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다 네년 짓이다! 폐하께서 날 거들떠보지 않으시는 것도, 이 궁이 뒤죽박죽이 된 것도! 내가 네년 농간을 모를 줄 알았느냐! 절대로 네년도 네년의 늙은 어미도 가만두지 않겠다!”
침상에서 내려오는 강원주를 춘희가 다급히 부축했다. 자칫 바닥에 넘어져 분노가 더 거세질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강원주는 숨을 헐떡이며 춘희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가 갑자기 홱 돌아서더니 옆에 서 있던 두 궁녀의 뺨을 차례로 올려붙였다.
“네년들이 감히 나를 비웃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더냐?”
그러고는 춘희에게 명령했다.
“방금 비실비실 웃고 있던 계집들을 전부 서답방에 보내거라. 천한 년들이 감히.”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정허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비 마마, 폐하께서 이 책을 전해 주라 하셨사옵니다. 부디 마마 혼자서 열람하시라 하셨고, 나중에 다시 들르시어 결과를 직접 확인하시겠다고 전하셨사옵니다.”
강원주는 바닥에 엎드린 ‘화비’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문밖에 아직 정허운이 기다리고 있는 터라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다.
마지못해 숨을 고른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문밖을 향해 말했다.
“정 내관, 전하의 뜻 감사히 받들겠네. 춘희가 나가 책을 받을 것이니 걱정 마시게.”
춘희는 강원주를 의자에 앉힌 뒤 문을 비스듬히 열고 재빨리 빠져나갔다. 문 너머로 어렴풋이 춘희의 감사 인사가 들려왔다.
이때 강원주가 갑자기 옆에 놓인 냉차를 들어 그대로 강희진의 몸 위에 들이부었다. 비죽이 올라간 입꼬리와는 달리 그녀의 눈빛은 서릿발처럼 매서웠다.
“폐하께서 너를 위해 친히 책까지 챙겨주셨다니. 무릎 꿇고 제대로 그려 보아라. 어디 그 손재주가 얼마나 능란한지 좀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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