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진은 속으로 이를 갈았으나 몸은 도리어 더욱 격하게 떨렸다.
“응? 불러놓고도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마침 잘됐구나. 네가 요즘 배운 것들을 검증해 볼 수 있겠어.”
선우진은 손을 거두며 강희진의 턱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제로 마주하게 했다.
“그 그림 속에 이것도 나와 있었더냐?”
얇은 입술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고 눈매는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느긋하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었다.
겉보기에는 웃고 있었지만 강희진은 오히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기쁘게 하면 오늘 벌은 없던 일로 해주지.”
선우진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단호했다.
후궁은 곧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전쟁터에서는 창과 칼을 겨루지만 궁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다투는 법.
오늘 숙빈 앞에서 그녀에게 내린 벌이 고작 5일간의 금족령이라 하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폐하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비가 하찮은 궁녀 하나를 처벌한 죄로 벌을 받았다. 이는 그녀가 폐하의 눈에 그다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이 틈을 타 숙빈이 다른 이들을 포섭한다면 강희진은 앞으로 더욱 궁 안에서 발을 디디기가 어려워질 터.
세상에 미녀는 차고 넘친다.
폐하가 베푸는 한 줌의 자비로운 애정만으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이곳이었다. 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했다.
강희진은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재빨리 정신을 다잡고 그녀는 유혹적인 목소리로 ‘폐하’ 하고 속삭이며 조심스레 입술을 맞댔다.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입술이 닿으면서 서로의 숨결마저 얽혔다.
강희진은 손끝을 따라 움직이며 방금 자신이 겪은 일을 고스란히 선우진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녀의 손길이 점점 깊어질수록 선우진의 숨소리는 한층 거칠어졌다.
강희진은 속삭이듯 웃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내를 유혹하는 요녀 같았다.
결국, 그녀 위에 엎드린 선우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밤,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촘촘히 얽혀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향로의 향이 거의 다 타들어 갈 즈음, 선우진은 만족스러운 듯 강희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강희진의 뺨은 홍조로 물들었고 앵두 같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가녀린 가슴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렸다.
“연화전으로 돌아가자.”
선우진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지고 정허운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던 궁인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굳어버렸다.
연화전은 황제의 침소였는데 어느 후궁도 그곳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생전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던 선황의 현덕황후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선우진이 강희진을 데리고 연화전에 머무르게 했다니. 이 소식은 날이 밝기도 전에 성 전체에 퍼졌다.
후궁에서 여인들의 운명은 오직 선우진에게 달려 있었다.
누군가가 한순간 총애를 독차지한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로 인해 초조함을 느껴야 했다.
“그 천한 계집! 여우 같은 년이!”
영녕궁 안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깨진 도자기 파편이 사방으로 널려 있고 술잔이 바닥을 적셨다.
숙빈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고 평소 선우진 앞에서 보이던 우아한 자태는 온데간데없었다.
“마마, 부디 진정하십시오.”
청심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며 나직이 말했다.
“화비가 남자를 유혹하는 재주는 실로 대단하구나.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화비의 부친이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하셨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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