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영은 함영희에게 최근 부서의 상황을 모두 털어놓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함영희는 우는 것보다 더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영 씨, 내가 말 안 한 것 같은데 사실 교수님이 나랑 얘기할 때 누군가 병원에 압박을 넣는다고 말했어.”
그녀는 상당히 서글펐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나 같은 간호사 때문에 대단한 사람들에게 밉보이기 싫겠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문가영은 이미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문소운이 병원에 언질을 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문가영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굳이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진 않지만 그 여자 말고는 이렇게까지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가영 씨 조심해. 그 여자가 가영 씨를 노리는 것 같아.”
여기까지 말을 꺼낸 이상 함영희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문가영도 문씨 가문이 개입해서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함영희의 입에서 이런 말을 전해 들으니 한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어쩐지 며칠 동안 교수님께 찾아가 얘기하려고 하면 그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곤 했다.
문가영은 생각을 정리하며 나지막이 함영희를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 나와 수간호사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영희 씨를 도와줄 테니까. 병원에서 처벌을 미루는 게 오히려 제일 좋은 결과야. 우린 모두 영희 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함영희는 입을 삐죽거렸다.
“괜찮아, 난 이미 마음 정리 끝났어. 다른 일 해도 되는데 굳이 힘든 이 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그러지. 참,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그녀가 갑자기 묻자 문가영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도와줄게.”
하지만 함영희는 조금 어색한 표정이 역력했다.
“친구 연락처 나한테 줄 수 있어? 여자 친구 있나?”
갑작스럽게 대화가 다른 곳으로 튀자 문가영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물었다.
“무슨 친구?”
“아이참, 저번에 응급실에서 점프슈트 입었던 그 남자 말이야.”
딱 자신의 이상형인 남자 때문에 함영희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문가영은 헛기침하며 서둘러 말했다.
“여자 친구는 없는데...”
장연수가 말을 더듬는다는 얘기를 함영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 끝에 그녀는 장연수에게 물어본 다음 바로 연락처를 넘겨주기로 했다.
이런 건 장연수가 직접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와 친구 추가까지 한 함영희는 잔뜩 신이 난 모습이 전혀 정직당해 집에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함영희를 보낸 뒤 조 원장이 전화를 걸어 에둘러 물었다.
“가영아, 식품 검사 결과는 아직 안 나왔니?”
한순간 안 좋은 일들만 그녀를 덮쳐오는 것 같았다.
함영희도, 보육원도 모두 문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지성이 떠올랐고, 문가영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문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시 일터로 돌아왔을 때 진수빈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있었다.
그녀를 기다린 듯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검은 눈동자가 움찔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요.”
문가영의 살짝 찢어진 입술에 시선이 닿는 순간 진수빈의 목젖이 크게 요동쳤다.
그는 항상 절제된 모습으로 예의를 갖추며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지 문가영 앞에서는 유난히 욕심이 생겨 갈증만 났다.
다른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문가영은 힘없이 말했다.
“무슨 일이죠?”
“함영희 씨 일 말인데요...”
이번 한 번만 그녀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문가영이 입을 열었다.
“함영희 씨 일은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어요. 단지 누가 힘없는 사람 괴롭히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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