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 박철용의 표정에 성유리도 더는 뭐라 할 엄두가 안 나서 서둘러 핸드폰을 가져와 박지훈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통화버튼까지 누른 뒤 핸드폰을 박철용 손에 들려줬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 남성의 잔뜩 잠긴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성유리의 귀에도 들려왔다.
“지금 당장 집으로 와. 할 얘기 있어.”
“나 저녁에 회의도 있는데, 그냥 전화로 해요.”
“안돼. 만나서 해야 할 얘기야...”
박철용이 화 기운 때문에 기침까지 해대자 그의 건강이 걱정됐던 성유리는 핸드폰을 당겨오며 박지훈에게 언질을 주었다.
“할아버지가 아림이에 대해서 다 알아버리셨어요.”
더 이상 박철용을 화를 돋우면 안 돼서 미리 알려준 건데 박지훈도 이를 알아들은 듯 잠깐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선뜻 나온 그의 대답에 입구에 서 있던 박진우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박철용의 부름에 한 번에 달려온 적이 없던 박진우인데 그렇게 까다롭게 굴던 사람이 성유리의 말 한마디에 온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은 성유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의약 상자를 정리했다.
“진우 너 나 좀 부축해라. 거실에서 지훈이 기다려야겠어. 오늘은 다들 저녁 먹고 가. 먼저 갈 생각들 하지 말고.”
자신을 콕 집어하는 말인 것 같아서 성유리는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박지훈이 아림이라는 아이가 딸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는 걸 보면 그에게도 생각이 있을 것 같아 성유리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박지훈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박진우가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 통해서 듣는 것보다는 가족이 사실을 전해주는 게 낫잖아요. 안 그래요?”
박진우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박지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날이 선 듯한 옆태는 따스한 분위기의 조명 때문인지 이상하게 온화해 보였다.
그때 박지훈이 사람도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친구 딸아이일 뿐인데 그걸 굳이 알릴 필요는 없잖아.”
“뭐라고요? 친구 딸이요?”
박진우가 당황하며 되묻자 성유리는 그제야 마음을 짓누르던 돌이 좀 치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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