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박진호는 잠에 들지 못했고, 식은땀에 잠옷이 흠뻑 젖었다.
옷을 벗자, 거울에 건장한 체격이 비췄다. 구릿빛 피부 곳곳에 오래된 상처가 가득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상이 재발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는 이미 익숙한 듯, 침대 머리맡 서랍을 열고 진통제 두 알을 꺼내 삼켰다.
그리고 아이들 방에 들러볼 생각에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래층 부엌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 안, 심민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대려다 보는 박진호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죽 하나 끓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
다음 날 아침.
“한 번 먹어 봐. 위에 좋은 죽이야.”
심민아는 따끈한 죽 몇 그릇을 식탁에 놓으며, 박진호와 박지훈, 그리고 박수연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박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눈가에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을 바라봤다.
“네가 직접 만든 거야?”
심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요리도 할 줄 알아?”
박수연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놀란 건 단지 요리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자신들을 위해 부엌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전에는 이런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심민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냥 부엌에 들어가서 만드는 거지, 뭐가 그렇게 어려워.”
사실은 어젯밤, 이 죽을 만들겠다고 난리 치다가 냄비만 다섯 번 태워 먹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박지훈은 눈앞에 놓인 죽 그릇을 밀쳐 냈다. 전혀 호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뭘 믿고 먹어. 꿍꿍이가 있는 게 뻔한데.”
죽을 밀쳐도, 심민아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이미 충분히 예상하던 반응이었지만, 막상 겪으니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기는 했다.
“괜찮아...”
“낭비하지 말고 먹어.”
그녀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박진호가 죽 그릇을 다시 박지훈의 앞으로 밀었다.
박지훈은 곁눈질로 그를 보며 비꼬았다.
“아빠는 어젯밤 도둑질이라도 다녀왔어? 눈 주변이 시꺼멓네?”
박진호는 하품까지 하고 있는 심민아의 손목에 붙은 밴드를 보았다.
그리고 비서 한동욱에게 지시했다.
“개 풀어서 물어버려요.”
차가 막 차고에서 빠져나오려는데, 박진호는 강소라가 허둥지둥 자기 집 대문에서 도망치는 광경을 봤다.
그 뒤로는 사나운 도베르만 두 마리가 쫓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우스꽝스럽고 처참한 모습, 아들의 작품이라는 건 뻔했다.
박진호는 막아서지 않았다. 어차피 강소라는 당해도 싼 사람이니까.
“주식의 신 쪽에서 답장은 왔나?”
박진호가 문득 물었다.
‘주식의 신’이 움직인다는 소식은 전 재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모두가 그와 손잡으려 애썼다. 그건 곧 주식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의 주식 가치와 시세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물론 박진 그룹의 주인이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박진호도 그를 포섭하고 싶었다.
한동욱이 보고했다.
“주식의 신이 저희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방성훈 대표와 손을 잡은 듯합니다.”
이 말을 듣자, 박진호의 눈썹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주식의 신이 하필이면 방성훈 같은 쓸모없는 놈을 택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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