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씨, 아마 교수님이랑 같이 다른 프로젝트 진행 중일 거예요.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는 굳이 박은정 씨가 나설 필요도 없거든요.”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자기소개를 덧붙였다.
그제야 권해솔은 그녀의 이름이 성서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권해솔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권해솔 씨,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간단히 소개해 줄까요?”
이후 두 사람은 실험실을 함께 둘러보기 시작했다.
익숙한 기계, 익숙한 냄새.
그 모든 것이 마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지금 우리 프로젝트 인력이 좀 부족해서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뽑을 생각이에요.”
성서리는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본래 본사에 있다가 얼마 전에 막 이쪽 실험실로 옮겨온 터라 아직 인맥도 없고 쓸 수 있는 인재도 제한적이었다.
“제가 아는 친구 중에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요. 조건이 맞는다면 소개해 드릴게요.”
권해솔이 떠올린 사람은 바로 고민재였다.
둘의 대화는 예상보다 훨씬 잘 이어졌고 그런 두 사람을 문밖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강재하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실험실 원장까지 직접 출동한 상태였다.
“1년에 한두 번 오실까 말까 한 분인데, 오늘은 어쩐 일이시래?”
원장은 부리나케 모자를 쓰며 조심스럽게 비서에게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방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기양도 실험실은 강성 그룹 사옥 바로 옆에 있었지만 대부분의 직원조차 쉽게 지나칠 만큼 존재감이 낮았다.
심지어 배달 기사들조차 이곳을 지나쳐 본사 건물로 바로 들어가 버릴 정도였으니까.
“대표님, 오늘은 어떤 부서의 실험을 보러 오신 건가요? 지금 각 팀 다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원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프로젝트 현황을 읊기 시작했고 강재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못 봤더니 우리 사이가 이렇게 서먹해진 거예요?”
성서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고 강재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역시 권해솔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고 싶었다.
그 순간, 권해솔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으며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갔다.
“잠깐만요, 얼굴을 좀 잘 보게 가만히 있어봐요.”
성서리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강재하의 시선은 이미 권해솔의 뒷모습을 따라 멀어지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선은 지킬 테니까. 그쪽한테 들키는 일은 없을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잔소리에 권해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임유승은 분명 자기보다 어린데 오히려 걱정하는 건 항상 그쪽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직접 마주쳐야 할 거야. 그 여자가 나를 눈치챘다면... 그냥 계획을 앞당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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