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채나연의 속내를 뻔히 알았을 것이다.
권해솔에게 들킨 뒤, 그녀는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용히 서류를 내려놓고는 방을 나섰다.
하지만 다행히 과일에는 손을 대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는데 단지 권해솔의 위장이 원래 좀 예민해 벌어진 해프닝인 것 같았다.
권해솔은 처음에 방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럴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해야 강재하뿐이라는 걸 떠올리곤 곧바로 마음을 접었다.
오후,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진 뒤에 곧 첫 번째 세미나가 시작됐다.
이번 세미나는 유람선 안 가장 중앙에 있는 계단형 강당에서 열렸다. 2천 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 공간이었지만 이번 학술 토론회를 위해 승선한 사람은 고작 200여 명 정도였다.
권해솔이 막 강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 먼저 와서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한 고민재가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
자리에 앉자마자 권해솔은 권설아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게 발견했고 예상대로 그녀 역시 그 자리를 탐내고 있었다.
“못 들었어?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권해솔은 막무가내인 권설아를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새엄마는 얘를 낳을 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애가 나올 때 머리가 어딘가 끼인 건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권설아는 이곳이 마치 자기 집 안방인 것처럼 도도하게 행동했는데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여기가 무슨 네 집이야? 다른 데 앉기 싫으면 그냥 나가.”
권해솔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받아치자 옆에 서 있던 강현수가 바로 나섰다.
“넌 그래도 설이 언니잖아. 고작 자리 하나쯤은 양보 좀 해주면 안 돼?”
사실 이 넓은 강당에서 두 자리만 떨어져도 시야는 별 차이 없었다. 그러니 권설아의 목적은 뻔했다.
권설아는 지금 어떻게든 권해솔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권해솔은 예전의 권해솔이 아니었다.
이곳엔 권태산도 없었기에 더 이상 그녀를 억누를 사람도 없었다.
강현수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었고 바로 그때, 정장 차림의 남자 무리 속에 외국인 한 명이 서서히 등장했다.
그렇게 두 번의 세미나가 연이어 끝났지만 권해솔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민재조차 짧게나마 의견을 밝혔는데 권해솔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너한테 자료도 그렇게 많이 줬잖아. 왜 아무 말도 안 해?”
세미나가 끝난 뒤, 고민재는 권해솔을 데리고 갑판으로 나와 답답한 듯 물었다.
“나도 안 급한데 네가 왜 이렇게 급해하는 거야?”
권해솔은 옆에서 발까지 동동 구르며 애만 태우는 고민재가 우스워 보였다.
“다들 니콜 앞에서 어떻게든 눈도장 찍으려고 아등바등하잖아. 방화도에 있는 연구소에서 인재를 영입할 의향이 있다고 하더라고. 네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해.”
모두가 연구소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건 당연했으니 앞다투어 나서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권해솔은 조용히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원하는 게 많을수록 약점도 많아지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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