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순간, 고인성이 송유리의 손목을 붙잡고 가까이 당겼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송유리는 얇은 옷을 사이 두고 그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막았지만 고인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
“생각보다 배짱이 좋네. 감히 나를 거절하다니...”
송유리는 겁에 질렸지만, 억지로 담담한 척했다.
“저는 단지 결혼이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결혼은 두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를 협박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맞아. 나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고인성은 송유리의 손을 슬쩍 놓아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밀어냈다.
금방이라도 연인처럼 가까웠던 거리가, 한순간에 예의를 차리는 거리로 벌어졌다.
“하지만 결국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올 거야. 똑똑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든든한 백이 될 사람을 선택하겠지.”
송유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살아가면서 백이 있는 건 정말 중요하지. 하지만 어떻게 고인성이 그런 든든한 사람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지? 짧은 시간에도 기분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타입인데... 지금처럼 젠틀하게 웃다가도 다음 순간 갑자기 화를 낼지도 몰라.’
사실 그녀는 고인성을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고인성이 자기처럼 평범하고 무력한 사람에게 진짜 감정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저 새롭고 신기해서, 아니면 단순히 재미있어서 그러는 걸지도 몰라.’
송유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인성은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송유리는 명함을 받아 들고 잠깐 바라봤다.
[청원그룹 CEO, 고인성]
청원그룹은 고인성이 5년 전 단독으로 설립한 패션 브랜드였다. 단 5년 만에 로켓처럼 성장해 이제는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 반열에 올랐고 수많은 젊은이가 열망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고인성의 재산도 함께 치솟아, 이제는 포브스 랭킹에서도 그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고인성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물론 내 연락처를 추가해도 돼.”
그 말은 송유리에게 꽤 큰 특혜였다. 고인성 같은 대기업 대표의 개인 연락처는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고민이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고작 알겠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늘 말을 아끼던 고인성이었지만, 오늘은 오히려 자신이 말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송유리는 입술을 꼭 다문 채,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기억할게요. 감사합니다.”
“...”
짧은 한마디에 그녀가 느낀 감정은 충분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대화가 끝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할 말은 다 한 것 같았고 더 이상 이어갈 이야기가 없었다.
“고생했어. 이제 가 봐.”
“정말... 가도 되는 건가요?”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롭게 풀린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별다른 상처도 받지 않았다.
송유리는 혹시 자신이 고생을 즐기는 이상한 성향이라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고 싶지 않다면 여기 있어도 돼.”
“아, 아니에요! 지금 바로 갈게요.”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송유리는 마치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고인성이 갑자기 마음을 바꿀까 봐, 뒤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
“송유리는 이제 못 나올걸?”
“그러게 말이야. 고인성 대표님이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봐. 황이진을 거의 죽일 뻔했잖아. 송유리가 무사히 나올 리가 없지. 이번엔 진짜 끝났어.”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어린 나이에 제대로 배우지 않고, 맨날 저런 대단한 사람 꼬셔보겠다고 설치더니, 결국 이 꼴이 된 거잖아. 내 말이 맞았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돈 좀 번다고 웃고 다니더니, 이제는 울 기회조차 없겠네.”
황이진은 가장 먼저 송유리에게 달려가 그녀의 몸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맞은 거야? 어디 다친 데 있어? 고 대표님이... 너한테 뭐 한 거 아니지?”
송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자세히 설명할 틈도 없이 다시 문이 열렸다.
고인성이 문가에 서 있었다.
황이진은 송유리를 붙잡고 재빨리 옆으로 물러났다.
복도를 메우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훈련이라도 받은 듯 동시에 길을 비켰다.
송유리는 문을 나서는 고인성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예전의 차갑고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변을 에워싼 보디가드들 틈에서 그는 시선조차 흔들리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황이진은 송유리의 머리를 손으로 눌러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보지 마. 이번에 그냥 넘어간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절대 다시는 그 사람 건드리지 마.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어...”
“알겠어요.”
송유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고인성과 그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비트 타운의 직원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늘 밤 벌어진 일들은 비트 타운 직원들의 영혼을 쏙 빼놓았다. 심지어 매니저 진우정조차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도 고인성의 기분에 따라 비트 타운이 하루아침에 사라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손서우, 황이진, 너희 둘은 이제 비트 타운 사람이 아니야. 당장 꺼져!”
손서우는 욕설을 내뱉으며 나갔다.
황이진은 마지막으로 송유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본 후 뒤따라 나갔다.
매니저 진우정은 송유리를 한 번 흘겨보더니, 짜증스럽게 말했다.
“오늘 무사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거야. 앞으로 또 이런 큰일을 일으키는 사람은 당장 내보낼 거니까 알아서 해. 진짜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냐고!”
진우정은 송유리가 무사히 나온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고인성 대표님이 송유리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를 저질렀다고 해도 함부로 쫓아내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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