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언니의 과거라... 그래... 겁먹을 수밖에 없지.’
송유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황이진과 처음 만난 건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황이진은 마치 굳게 닫힌 책 같았다.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법도 없고 누가 묻는다고 해서 선뜻 대답할 사람도 아니었다.
송유리는 그녀의 그런 태도를 존중했고 굳이 캐묻는 일 없이 묵묵히 곁을 지켰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황이진의 집안 사정은 단편적인 장면들로 송유리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퍼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황이진은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사회에 나가 일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삶을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송유리는 그녀가 고객을 상대하느라 술을 억지로 들이켜던 모습도 많이 봤었다.
그러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만취한 채 복도에 쓰러져 있거나, 휴게실, 심지어는 화장실 앞에서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마치 어디든 바닥만 있으면 잠들 수 있을 만큼 지쳐 보였고, 그런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손님들의 눈빛은 늘 불쾌하고 싸늘했다.
그럴 때마다 송유리는 황이진을 어떻게든 옷을 갈아입는 그나마 사람이 적은 탈의실로 데려갔다.
그렇게 여러 번 마주하고 데려가고 안부를 묻다 보니 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송유리는 비트타운 뒷문 앞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쳤다.
황이진이 어머니에게 막다른 골목처럼 몰리고 있었다. 돈을 요구당하고 있었고 황이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없다고요! 정말로...”
그 말에 그녀의 어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 돈 못 받으면 네 아빠한테 맞아 죽어! 너 진짜 내가 죽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내가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지! 그래야 두 번 다시 돈 달라고 안 하니까!”
그 비명 섞인 울음은 저녁 골목의 고요함을 산산이 부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고 황이진은 모멸과 수치, 분노와 체념이 섞인 얼굴로 결국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남은 현금을 건넸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서서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
황이진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어머니가 돌아봐 주기만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그 기대는 끝내 저버려졌다.
그녀는 말없이 방금 익힌 소고기 한 점을 황이진의 앞접시에 조용히 덜어주며 말했다.
“됐어요! 오늘은 그냥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한 날을 보내요. 속상한 얘기 말고 맛있는 걸로 위로받자고요.”
“유리 너도 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키자.”
“그럼요. 진짜 많이 먹을 거예요.”
“좋아. 실컷 먹어.”
두 사람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연애 이야기만은 조심스럽게 피해 갔다.
잠시 뒤, 황이진이 조용히 물었다.
“근데... 너 어제 연극무대 올랐다며?”
송유리는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언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혹시나... 진짜 마음속으로 빌면 이뤄지는 능력이라도 생긴 걸까? 이진 언니랑 인성 씨, 둘 다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내가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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