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 가문에서 초대한 대부분 손님은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도우미들이 식기를 정리해 치우고 후식으로 차와 다과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 채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지만 송유리는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어쩐지 등줄기까지 시선이 따라오는 듯한 기분에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지서연이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그녀의 얼굴에 구멍을 뚫을 기세였다.
‘저 눈빛은... 정말 날 죽여버리고 싶어 보이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지서연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기세로 더욱 날을 세웠고 송유리는 오히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여유롭고 느긋해서 마치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괜찮아요’라는 말 없는 선언 같았다.
“저년이 진짜...”
지서연은 치솟는 분노에 얼굴까지 붉어졌고 하마터면 식탁을 넘어 멱살이라도 잡을 뻔했다.
그때 지옥순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주먹을 꽉 쥔 채 씩씩대고 있는 지서연의 팔을 조용히 붙잡았다.
“서연아...”
지옥순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예의는 좀 지키자. 네 이미지가 걸려 있는 자리야.”
지서연은 꾹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화를 낼 수 없는 상황도 화가 났고 바로 터뜨릴 수 없다는 게 더 억울했다.
잠시 후, 지옥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얘들아, 여기 어른들 이야기만 계속하니까 좀 지루하지? 옆에 있는 다실도 손님 접대 준비를 했으니까, 거기로 옮겨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자.”
그녀는 젊은 여성 손님들에게 손짓하듯 말하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지서연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서유진도 뒤따랐다. 고인성의 형수인 공여원도 남편에게 몇 마디를 건넨 뒤 조용히 따라나섰다.
하지만 송유리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솔직히 다실이든 이 자리든 재미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곳엔 적어도 고인성이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할 사람이라도 있는 이 자리가 훨씬 나았다.
그러나 다실로 따라 가면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곁에 서 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그 조용함이 오래 갈 리 없었다.
지옥순이 정확히 그녀를 겨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유리야, 너는 안 갈 거야?”
송유리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냥 여기 있을게요. 어른들 말씀 듣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서요.”
그 순간, 지서연이 턱을 들며 비웃듯 말했다.
고성진이었다.
짧고 단호한 부름 한마디에 고인성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은 이미 등을 돌린 송유리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등 뒤로 날아온 말은 매섭고 단호했다.
“거긴 여자들이 모이는 자리다. 사내 녀석인 네가 거길 왜 따라가?”
고인성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대답했다.
“제 색시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요.”
그 짧은 말은 너무나 당당해서 오히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고성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리로 돌아와... 너랑 할 얘기가 있어!”
고인성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앉았고 눈길은 자꾸만 다실 쪽으로 향했다.
‘그쪽은 혼자 감당하기 힘들 텐데... 방법을 찾아야겠군.’
그 순간, 고성진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또렷했다.
“인성아, 평소엔 네가 뭐라고 하든 내버려뒀다. 하지만 결혼만큼은 그렇게 막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리 고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데! 사람들이 고작 그런 애랑 결혼했다고 수군대는 소리를 듣게 만들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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