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돈은 절대 못 주겠다는 말이야?”
장옥영이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
“난 당신들한테 빚진 거 없어요. 골수를 이식해주는 것으로 깔끔하게 다 갚았어요.”
권예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늘한 태도로 강경하게 말했다.
20억을 준다고 해도 장옥영은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구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기자한테 연락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권예진이 잠깐 멈칫하더니 비웃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호열 씨가 이 모든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랄까요?”
김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져도 상관없지만 공호열은 구겨지면 안 되었고 공씨 가문은 더더욱 안 되었다.
“너...”
분노가 치밀어 오른 장옥영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권예진, 너 그러다 큰코다칠 수 있어.”
그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야. 당장 내일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수 있다고. 친정이랑 등을 돌리고 시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면 그땐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어.”
권예진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장옥영은 흠칫 놀랐다. 권예진이 고집도 세고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권예진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어버렸다.
시간이 벌써 꽤 늦었다. 장옥영 때문에 자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쇼핑백에 담긴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쇼핑백이 여러 개나 되었다.
2층.
공호열은 정민욱을 서재로 불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번에 본가에 갈 때 권예진이 내가 준 카드로 옷을 샀어?”
그가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던 정민욱은 잠깐 당황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대표님, 권예진 씨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정민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호열이 차갑게 쏘아보았다.
“지금 그 여자 편을 드는 거야?”
“그럴 리가요.”
공호열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창가에 서 있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크게 한탕 하려면 밑밥부터 깔아야 하는 법이야. 아직 공씨 가문 안주인 자리에 앉지 못했으니까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안 되지.”
그뿐만 아니라 갖가지 방법으로 그의 관심을 끌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 온 여자들 중에서 권예진이 가장 똑똑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민욱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그런 걸까?’
공호열은 손을 휘저으면서 나가라고 했다.
“계속 지켜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정민욱이 나간 후 공호열도 서재를 나섰다.
똑똑, 똑똑.
권예진이 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 잠갔으니까 들어와요.”
권예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만약 이 옷들을 받지 않는다면 정우현은 다른 방법으로 그녀에게 보상하려 할 것이다.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다 받았다.
받은 이상 앞으로 입고 다녀야 했기에 숨길 생각이 없었다.
옷을 정리하던 그때 옷더미에서 봉투 하나가 툭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권예진은 본능적으로 봉투를 집어 뒤로 숨겼다.
훤칠한 남자가 마침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야? 이리 줘 봐.”
낮고 굵은 목소리에 강압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나도 뭔지 몰라요...”
편지 내용을 읊기 시작하던 공호열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전에는 네가 날 챙겨줬으니 이젠 내가 널 챙겨줄게. 예진아, 나만 믿어. 널 더 행복하게 해줄게. 우리 손잡고 평생을 함께하자...”
“허.”
공호열이 코웃음을 쳤다.
“손잡고 평생을 함께하자? 나 몰래 만나는 거 보니까 남자가 매달라는 걸 엄청 즐기나 봐?”
“그게 아니라...”
권예진이 해명하려는데 공호열이 가차 없이 잘라버리더니 명령하듯 말했다.
“휴대폰 이리 줘.”
그녀는 순순히 휴대폰을 꺼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잠금 해제.”
그의 말대로 잠금도 해제했다.
공호열은 힘 있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저장된 번호가 몇 개 없어 정우현의 번호를 바로 찾아냈다.
우현이라고 저장된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분노에 휩싸였다.
그가 대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던 권예진은 불안한 마음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공호열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그녀에게 던져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화해서 나오라고 해.”
권예진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요?”
“왜? 싫어?”
얼음처럼 차갑고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 날카로웠고 끝까지 파고들 기세였다.
그녀가 멍하니 서 있기만 하자 공호열은 인내심을 잃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권예진은 중심을 잃고 그의 넓은 가슴에 부딪히고 말았다. 얇은 셔츠를 사이에 두고 그의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동시에 소름 끼치는 위험한 기운이 그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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