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예진은 티 나지 않게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
“카드 긁긴 했어요. 근데 사지 않고 전부 환불했어요.”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공호열에게 내밀었다.
“카드 돌려줄게요.”
공호열은 카드를 받지 않고 그저 실눈을 뜨고 살벌하게 쏘아보았다.
“사람은 골탕 먹이고 돈은 환불받고. 아주 신났겠네?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
그는 비웃음과 차가움이 섞인 두 눈으로 환하게 웃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김다윤은 보석 매장에서 13억 넘게 긁었고 권예진은 20억 넘게 긁었다. 거액을 한 번에 긁은 것만 봐도 김다윤이 완벽하게 놀아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권예진은 마음이 씁쓸해졌다.
‘칭찬? 욕하고 싶은 거겠지.’
그녀는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당당하게 말했다.
“공씨 가문 미래 안주인이 그저 장식품이라고 해도 적어도 품위는 잃지 말라고 했죠? 그러니 백화점에서 망신당해서야 하겠어요? 그건 호열 씨 얼굴에 먹칠하는 거고 공씨 가문의 명예까지 어지럽히는 거잖아요.”
“허.”
공호열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결국 내 탓이라는 거야?”
권예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건 호열 씨한테도 큰 책임이 있어요. 호열 씨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치는 게 싫었다면 애초에 이 카드를 나한테 주지 말았어야죠. 이 카드만 없었다면 오늘 같은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남자는 여자 앞에서 자신의 권력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여자는 남자 마음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녀의 말에 공호열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래서 확인 다 했어?”
“네.”
권예진은 블랙카드를 그의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
“이기는 사람은 항상 내가 아니었어요. 적어도 지금은요.”
그녀의 행동에 공호열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고 말 못 할 감정이 밀려왔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굳은 표정으로 엄포를 놓았다.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는 돈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여자가 머리를 굴리고 수를 쓰는 걸 극도로 싫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권예진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권예진은 그의 날카로운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무 단정 짓지는 말아요.”
그때 공호열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바람에 그녀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알아. 푼돈인데 뭐... 요즘 많이 속상했지? 사고 싶은 거 다 사. 너만 기분이 좋으면 돼...”
김다윤은 스피커폰을 켜고 전화를 받았다. 공호열의 말에 장옥영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통화를 마친 후 장옥영은 입이 다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내 말이 맞지? 13억이 호열이한테는 푼돈이라니까. 겨우 다이아몬드 목걸이 하나 샀다고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네가 목숨까지 살려줬는데 그깟 13억이 뭐 대수라고.”
“엄마.”
김다윤이 서둘러 말했다.
“엄마, 권예진이 지금 호열 씨 블랙카드를 마음대로 긁고 오아시스에서 호의호식하는 거 전부 다 우리 김씨 가문의 덕이 아닌가요? 우리가 산골짜기에 처박혀 있던 걔를 공씨 가문에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무슨 재주로 공씨 가문에 빌붙었겠어요. 안 그래요?”
“네 말은...”
장옥영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권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권예진, 너 지금 오아시스에서 떵떵거리면서 호의호식하고 있지? 우리한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건 알기나 해?”
장옥영이 속셈을 드러내자 권예진이 싸늘하게 웃었다.
“무슨 빚이요?”
“내가 널 직접 키우진 않았지만 어쨌든 널 낳아준 건 나잖아. 게다가 산에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공씨 가문에 빌붙을 기회나 있었겠어? 네가 다윤이 약혼자를 빼앗고 잘 먹고 잘사는 건 좋은데 김씨 가문과 엮이고 싶지 않으면 돈으로 갚아야지. 20억 내놓지 않으면 네가 저지른 더러운 짓들을 전부 다 기자들한테 까발릴 거야.”
장옥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당당하게 협박했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말에 권예진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한테 낳아달라고 한 적 없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내 친모라는 것만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예요. 그리고 왜 날 김씨 가문에 데려왔는지 당신들이 더 잘 알 거 아니에요.”
김씨 가문으로 돌아간 날 장옥영이 했던 말을 권예진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예진아, 네가 우리 친딸이긴 하지만 우린 다윤이를 20년 동안 키워 왔고 그래서 정이 깊어. 다윤이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성격도 예민하고 자존심도 엄청 강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 미안하지만 외부에는 네가 우리 집 양녀라고 하면 안 될까? 넌 착해서 우리 마음을 이해할 거라고 믿어.”
“다윤이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고생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넌 산에서 자라 웬만한 고생은 다 감수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네 아빠 골수 이식을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
“도교 사원에서 환자도 치료했다면서? 마음씨가 착한 네가 친아빠를 외면할 건 아니지?”
의사는 낯선 사람도 치료하는데 친아버지를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
골수 이식을 한 후 권예진은 병원에서 요양했다.
그러다 우연히 김다윤과 성한빈이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때 옥팔찌와 공씨 가문의 일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건 다 김씨 가문이 계획한 일이었다.
ความคิดเห็น
ความคิดเห็นของผู้อ่านเกี่ยวกับนิยาย: 피보다 진한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