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원고를 들고 있었지만 권예진은 시종일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녀가 쓴 논문은 심오하면서도 재미있었는데, 한의학을 모르는 사람도 대충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차근차근 담아냈다.
권예진은 연설문을 보지 않고도 물 흐르듯 막힘없이 설명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상 발표를 마칩니다.”
말이 끝나기 바쁘게 거대한 강연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권예진은 활짝 웃으며 은근슬쩍 맨 앞줄 게스트석에 앉아있는 공호열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무덤덤한 얼굴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싸늘하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고, 권예진은 도발적으로 턱을 살짝 들어올리기까지 했다.
마치 그쪽도 훌륭하지만 자신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듯.
박수와 함께 주변의 칭찬도 이어졌다.
“젊은 아가씨가 대단하네. 전도가 유망해.”
“요즘 젊은이들 무섭다니까.”
“외모도 훌륭한데 재능까지 있어.”
권예진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섬세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무대 아래 수많은 눈과 카메라 렌즈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모습이 어느 이름 모를 시골에서 온 처녀가 아니라 귀티 나는 재벌가 아가씨처럼 보였다.
학술 발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곧 오찬이 이어졌다.
권예진이 그녀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찾아 자리에 앉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공호열이 정민욱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정민욱에게 김다윤을 데려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권예진이 무심하게 웨이터에게서 물 한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박지석이 의자를 끌어와 그녀 옆에 앉으며 예쁜 눈을 반짝였다.
“신의 형수님, 한의학 공부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누구한테 배웠어요?”
이 말을 들은 권예진은 참지 못하고 살짝 웃으며 박지석을 돌아보았다.
“지금 절 뭐라고 부르셨어요?”
“신의 형수님이요.”
그러다 박지석 외에도 주변에 권예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권예진 씨, 제 명함입니다.”
“제 명함인데요. 혹시 우리 병원에 올 생각은 없으세요? 조건은 원하는 대로 제시하세요.”
전부 배불뚝이 중년 남성이었기에 공호열은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막 뒤돌아 가려는데 키 크고 잘생긴 혼혈 미남이 권예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대충 봐도 190에 가까운 키에 잘 재단된 깔끔한 흰색 셔츠 밑단을 검은색 정장 바지에 집어넣고 탄탄한 손목에는 화려하지 않은 명품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여자는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부신 얼굴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게 빛났다.
그게 무척 눈에 거슬렸다.
“데니스?”
권예진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서둘러 박지선에게서 시선을 돌려 데니스라고 부르는 혼혈 미남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엔 기쁨과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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