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예진은 애써 침착을 되찾았다.
공호열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내가 훤히 드러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무서울 거였으면 애초에 나를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세상에 후회약은 없어.”
권예진은 눈빛을 곧게 맞추며 말했다.
“후회약은 없어도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는 법이죠. 호열 씨라고 예외는 아니에요. 약점이 있다는 건 제가 파고들 수 있는 틈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공호열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고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위험한 빛이 스쳤다.
“아직도 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나 본데.”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하고도 자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에 빠진다’는 게 뭔지 알려줄까? 몸을 섞어봐야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법 아니겠어?”
마지막 말끝을 질질 끌며 흘리듯 말하는 그 목소리는 낮고 묵직하게 귓가를 때렸다. 심장을 간질이는 듯한 음성에 권예진의 마음이 괜히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권예진은 바로 앞에 있는 남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고 공호열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사전에 ‘양보’ 같은 단어는 없어. 정우현? 난 걔를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아. 내가 정말 그 녀석을 없애고 싶었다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겠지. 굳이 이 난리 치면서 할 이유 없어. 이번 사고, 내가 조사 중이니까 곧 결과 나올 거야.”
권예진은 그와 눈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토록 잘생겼는데도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승님의 말이 떠올랐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은 가능한 멀리하거라.”
하지만 공호열은...
그는 그녀가 도망치기엔 이미 너무 가까운 존재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공호열을 휘두른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언제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그였다.
공호열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권예진은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지닌 여자였다. 그 눈동자 안에는 물결처럼 번지는 빛이 서려 있었고 마치 그 눈을 들여다보면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훤히 보일 것만 같았다.
눈을 뗄 수 없었고 괜히 심장이 덜컥거렸다.
권예진은 그의 시선이 이례적으로 날카롭다는 걸 느끼고 눈썹을 아주 살짝 찌푸렸다.
이전에도 공호열은 가끔 진료를 지켜보곤 했지만 이렇게 뜨겁게 시선을 고정한 적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의술은 물론 그녀라는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우현의 교통사고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이 바로 공호열이었으니까.
‘신뢰 부족’, 그건 그들 사이에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권예진은 작성한 처방전을 하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대로 약을 지어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녀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약방으로 가지 않고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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